영국 화가 줄리언 오피(57)는 패트릭 콜필드 같은 팝아트 1세대 작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2세대 팝아티스트다. 런던 골드스미스대를 졸업한 그는 1990년대 초반까지 주로 미니멀한 입체 작품과 풍경화를 그리다가 1998년부터 주변 인물의 모습을 군더더기 없이 단순명쾌한 형태와 색채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캘린더를 비롯해 CD 커버, 버스광고물, 교통표지판 등에서 자주 접하는 포스터 같은 그림은 앤디 워홀 이후 가장 대중적인 팝아트 작가로 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2006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성의 신체 특징만 단순화해 표현한 작품이다. 주변의 친근한 여성을 모델로 사진을 찍은 뒤 컴퓨터 작업을 통해 이목구비는 물론 머리카락, 손가락 등을 지워버렸다. 머리와 상체를 굵직한 선으로 처리해 데포르메(dformer, 형태의 왜곡) 효과도 노렸다. 사람을 보고 어떤 사실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느낌을 시각화한 것이다. 한 여성의 간결한 이미지는 현대인의 익명성을 대변하는 동시에 경쾌한 ‘삶의 아이콘’으로 다가온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