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해야 잘 친다'는 건 옛말… '친화' 이정민·'위트' 조윤지·'당당' 박인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경기가 있는 날, 선수들은 연습 그린에 모여 퍼팅을 점검한다. 이때 선수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스타’는 단연 이정민(23·비씨카드)이다. 선수들은 샷부터 경기 외적인 내용까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이정민에게 털어놓는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신인왕 김세영(22·미래에셋)은 “정민 언니와 국제전화로 한 시간 이상 통화할 때가 많다”며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에 많은 끼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정민은 지난 6월 한국여자오픈 4라운드에서 박성현(22·넵스)과 우승을 다퉜다. 당시 우승 경험이 없던 박성현이 막판 급격히 흔들리자 “캐디와 얘기하며 긴장을 풀어보라”고 조언했다. 박성현은 이 대회에서 우승한 뒤 “정민 언니의 배려가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이정민의 ‘황금 매너’는 경기가 끝난 뒤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

◆배려하는 선수가 성적 좋아

한때 골프계에선 ‘프로골퍼는 성격이 못돼야 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미스샷이 나오면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코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잘나가는 한국 여자 프로골프 선수들의 모습은 다르다. 조용하면서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선수가 골프도 잘 치는 시대다.

박성현은 말수는 별로 없지만 경기장에서 인사성 밝기로 소문났다. 선수는 물론 기자, 대회 관계자를 만나면 늘 밝은 모습으로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는 화끈한 장타를 앞세운 경기 스타일처럼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우원희 핑골프 기술팀 부장은 “박성현은 클럽을 고를 때 이것저것 다 쳐보지만 큰 고민 없이 확실하게 클럽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올해 KLPGA투어를 휩쓴 전인지(21·하이트진로) 역시 말수가 적고 조용하면서 집중력이 강한 성격이다. 포기할 만한 상황이 와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성격 덕분에 유난히 역전승이 많고 메이저대회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전인지는 올해 US여자오픈을 포함해 한·미·일 3개국 메이저대회를 제패했다.

올해 우승은 못했지만 커트 탈락 한 번 없이 상금 6위에 오른 배선우(21·삼천리)는 KLPGA 홈페이지의 자기소개에서 따뜻한 성격이 드러난다. 그는 ‘남을 많이 챙겨주는 게 단점이었지만 지금은 장점이 돼 나중에 더 큰 선수가 될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위풍당당 박인비

조윤지(24)는 늘 재치가 넘치는 ‘위트녀(女)’다. 그는 올해 5년 만에 BMW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부모님이 ‘우승하는 선수보다는 골프를 쳐서 행복한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며 “즐겁게 쳤는데 우승까지 해 기쁘다”고 말했다. 항상 재치있는 농담을 잘하는 조윤지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다른 선수도 즐겁게 한다.

‘골프 여제’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언제나 당당한 모습이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밝힌다. 그는 시즌을 마치고 여러 시상식에서 과감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햇볕에 그을린 팔다리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보기에는 안 좋을 수 있는데 자랑스럽다. 화장으로 하얗게 가리는 것보다 나 자신을 나타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연 ‘강철 멘탈’을 가진 그다운 말이었다.

박인비, 전인지, 이정민은 자신들의 성격에 대해 “필드에서뿐 아니라 평소에도 화를 잘 안 내고 무던한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세계를 제패한 한국 여자 골퍼들의 공통점이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