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하루 중 밤이 20시간…모든 대원이 실내서만 생활해
극한 환경서 대장임무 수행
"장보고 기지 설립으로 남극서 여성 과학자 역할 커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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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월동대장에 선임되자 극지연구소 안팎에서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여성이 월동대장을 맡은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안 대장은 1991년 이후 11차례나 남극에 다녀왔고 미국의 맥머도기지와 북극 다산기지에서도 연구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여성 월동대는 1996년 의사인 이명주 씨와 2009년 전미사 연구원이 참여한 것이 전부다. “16명 대원의 안전과 건강을 어떻게 지킬지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제대로 못하면 다음 여성 월동대장이 나오는 데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안 대장의 대학시절 첫 전공은 간호학이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해양학과 2학년에 다시 들어갔다.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외가가 있는 인천으로 오면서 바다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안 대장은 남극 경험을 많이 한 여성 과학자로서 역할 모델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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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공간에서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을 하면 심리적으로 지칩니다. 음식이나 소리, 냄새와 같은 본능에 민감해지죠. 규칙적인 생활로 신체 리듬을 잃지 않게 식사시간에 꼭 참석하게 하고 날씨가 좋으면 야외 체육 활동과 요리 경연대회를 자주 열었습니다.” 지난 4월 칠레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세종기지에 격려 전화를 걸어온 것도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생활에 어려움이 없는지 자세히 물어보셨습니다. 모든 대원이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펴달라고 당부하셨지요.”
1988년 처음 문을 연 이후 세종과학기지 연구를 바탕으로 발표된 논문은 400편이 넘고 기지에 다녀간 과학자는 1000명에 육박한다. 안 대장은 “킹조지섬에서 가장 적극적인 연구 활동을 하는 나라, 월동기간에 연구원이 상주하면서 연구를 하는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남극의 세종기지도 기후 변화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세종기지 근처의 마리안 소만(小灣)은 빙벽이 지난 60년 동안 1.7㎞가량 내려앉았다. 해양생물의 다양성에도 큰 변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는 10월 초까지 바다도 얼어 있었고 6~9월 평균온도가 평년보다 3도 정도 낮아 유난히 추웠습니다. 블리자드도 역대 평균(29.6회)보다 많은 35차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지 주변에선 새 생명이 태어나고, 생존을 위한 활동이 계속된다. 추석 직전인 지난 9월25일 웨들해표 새끼가 기지 부둣가에서 태어났다. “이튿날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기지 앞바다 얼음이 깨졌어요. 대원들은 여름을 알리는 ‘전령사’라며 기뻐했고, ‘세종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줬습니다.”
제28차 월동대는 16일 귀국길에 올랐다. 안 대장은 1년간 작성한 세종기지 주변 환경 변화와 생물에 대한 관찰일지를 토대로 다른 과학자들이 참고할 만한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세종기지는 해양연구, 기후변화 추세와 생태계 영향을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이 주도하는 국제 공동연구의 틀을 마련해 놓고 싶습니다.”
안인영 대장은…
1956년 출생
1979년 서울대 간호학과 졸업
1982년 서울대 해양학과 졸업
1984년 서울대 해양학 석사
1990년 미국 뉴욕주립대 해양학 박사
1991~1998년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1998~2010년 극지연 극지연구본부· 극지생물해양연구부 책임연구원
2014~2015년 12월 극지연 남극세종 과학기지 월동대장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