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총선에 출마하는 현직 장관 다섯 명과 임기가 만료된 국민권익위원장을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이번 개각의 핵심은 친박(친박근혜)계인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발탁했다는 것이다. 유 부총리 후보자는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일하다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지난달 12일 당으로 복귀했다. 박 대통령이 당으로 돌아간 지 한 달여 만에 유 후보자를 3기 경제팀 수장에 내정하고 다시 내각으로 불러들인 것은 국회와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12·21 개각] 법안 처리 지연되자…경제사령탑, 관료서 정치인으로 막판 급선회
박 대통령, 경제 챙기겠다는 의지

박 대통령은 부총리 후임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관료들과 유 후보자 등 정치인 출신을 놓고 막판까지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유 후보자를 낙점한 것은 핵심 경제 정책이 번번이 국회에 발목이 잡힌 상황을 고려했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19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등 핵심 민생법안의 처리가 무산되면서 대(對)국회 소통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야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또 “친박계 핵심인 유 후보자를 발탁한 것은 박 대통령이 경제정책만큼은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심복’으로 알려진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을 일선 부처 장관으로 발탁하지 않고 유임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오른쪽)이 21일 개각안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 수석, 육동인 춘추관장, 정연국 대변인. 연합뉴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오른쪽)이 21일 개각안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 수석, 육동인 춘추관장, 정연국 대변인. 연합뉴스
장관 5명 교체…총선용 개각

이번 개각의 또 다른 특징은 관료와 전문가를 중용했다는 것이다. 집권 4년차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정책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기재부 출신 정통 관료이며,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는 총리실에서 국정운영1실장, 국무1차장(차관급) 등을 지낸 정책기획통이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약 20년간 서울대 공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부총장을 지냈고,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산하 공대혁신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여성 기업인 출신으로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 개각 때 내각 구성원 중 총리를 포함한 장관 18명 가운데 여섯 명이 정치인이었다. 집권 2년 동안 국정 아젠다를 많이 던졌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추진력이 강한 정치인 출신을 대거 중용했다. 지난 10월 국토부와 해양수산부 장관을 교체하는 ‘1차 총선용 개각’에 이어 이번 2차 개각을 거치며 정치인 장관은 두 명으로 줄었다.

이번에 교체되는 다섯 명의 장관은 모두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희정 여가부 장관은 현역 의원이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과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각각 경주와 부산 지역에 출마할 예정이다. 이번 개각이 ‘총선용 개각’으로 불리는 이유다.

‘친박 강화’…당내 권력 지형 변화

친박계 핵심인 최 부총리와 황 부총리가 당에 복귀하면서 총선 정국에서 여권 내 권력 지형에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공천 룰을 둘러싼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최 부총리는 따르는 의원이 많아 앞으로 당내에서 친박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개각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나란히 유임돼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때 임명된 ‘원년 멤버’다. 한 번 믿고 맡긴 사람은 계속 중용하고, 쓰던 사람은 좀처럼 버리지 않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