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뮤지컬도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뮤지컬 ‘오케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5년간 준비한 배우 황정민이 첫 공연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화려한 ‘쇼 뮤지컬’이 대세인 뮤지컬계에 평범한 사람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였다.
내년 2월28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오케피’.
내년 2월28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오케피’.
그의 이야기대로였다. 지난 1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오케피’에는 모든 게 완벽한 주인공도, 극적인 이야기 전개도, 화려한 쇼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화려한 뮤지컬 무대 밑에서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삶에 대한 고민이 따뜻하게 녹아 있다. 오케스트라를 총괄하는 ‘허당’ 지휘자(황정민)가 별거 중인 아내 ‘바이올린’(박혜나)과 매력적인 ‘하프’(윤공주)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코믹한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중심 축이다. ‘오보에’(김태문)가 드라마의 깊이를 더한다. 일상적 삶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던 중년 남성 오보에 연주자가 20년 전 헤어진 딸을 만나며 뜨거운 부성애를 느낀다. 단원 13명은 각자 그들의 평범한 삶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가족애와 동료애를 느끼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처럼 모든 배우가 대체 불가능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황정민의 말처럼 단원 각각의 캐릭터가 독특하고 살아 있다. 조금만 연주가 복잡해지면 피아노 건반에 손만 올려놓고 연주하는 척하는 무능한 연주자지만, 늘 단원들을 보듬어주는 어르신 ‘피아노’ 역의 송영창, 다른 연주자들이 펑크낸 연주를 메우느라 바쁜 ‘멀티 플레이어’ 정상훈 등의 감초 연기가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연극적 요소가 강한 뮤지컬이라 넘버(삽입곡)가 적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음악적으로도 풍성한 무대다. ‘그들은 각각의 문제를 안고 연주한다’ ‘뮤지션의 굳은살에 대한 고찰’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야’ 등 클래식과 재즈, 발라드를 넘나드는 곡을 통해 일상을 담아낸다.

일본 극작가 미타니 고키가 쓴 첫 뮤지컬이다. 현실적인 내용으로 웃음을 주고, 끝날 때쯤 잔잔한 감동을 안기는 그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공연이 끝난 뒤 김문정 음악감독이 이끄는 18인조 오케스트라가 배우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연주하는 모습이다. 커튼콜에서 극중 평범한 일상복을 벗고 은색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올라온 배우들의 모습은 무대 뒤 연주자들에게 ‘당신들이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존경의 의미를 담은 멋진 예우였다. 내년 2월28일까지. 5만~14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