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시인 백석, 연극으로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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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우화', 대학로서 재공연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시인 백석(1912~1996)의 삶을 다룬 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이윤택 극본·연출, 이자람 작창)이 23일부터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재공연된다. 연희단거리패와 대전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지난 10월 초연 당시 ‘올해의 연극’이란 호평을 받으며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북에서는 쓰기를, 남에서는 읽기를 거부당한 천재 시인 백석에 대한 ‘기록극’이다. 월북시인으로 분류된 그는 남쪽에서 출판 금지 대상이 됐지만, 북쪽에서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그는 단지 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대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광복 이후 북한에 남은 백석은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번역극과 아동문학에 몰두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글이 공산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그를 삼수갑산 집단농장으로 유배 보낸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연극적인 언어로 백석을 일으켜 세운다. ‘여우난 곬족’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을 엮고, 거기에 백석의 삶을 입힌다. 아름다운 시어들은 소리를 입고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여기에 동시대를 산 문인들의 증언이 백석의 굴곡진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백석을 연기하는 배우 오동식이다. 자야를 그리워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던 청년부터 광기 어린 눈빛으로 대남방송에 출연해 ‘붓을 총, 창으로!’라며 울부짖는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던 백석은 자신의 시어처럼 이름 없는 농부로 살다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84세였다. 내년 1월17일까지. 3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시인 백석(1912~1996)의 삶을 다룬 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이윤택 극본·연출, 이자람 작창)이 23일부터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재공연된다. 연희단거리패와 대전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지난 10월 초연 당시 ‘올해의 연극’이란 호평을 받으며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북에서는 쓰기를, 남에서는 읽기를 거부당한 천재 시인 백석에 대한 ‘기록극’이다. 월북시인으로 분류된 그는 남쪽에서 출판 금지 대상이 됐지만, 북쪽에서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그는 단지 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대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광복 이후 북한에 남은 백석은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번역극과 아동문학에 몰두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글이 공산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그를 삼수갑산 집단농장으로 유배 보낸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연극적인 언어로 백석을 일으켜 세운다. ‘여우난 곬족’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을 엮고, 거기에 백석의 삶을 입힌다. 아름다운 시어들은 소리를 입고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여기에 동시대를 산 문인들의 증언이 백석의 굴곡진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백석을 연기하는 배우 오동식이다. 자야를 그리워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던 청년부터 광기 어린 눈빛으로 대남방송에 출연해 ‘붓을 총, 창으로!’라며 울부짖는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던 백석은 자신의 시어처럼 이름 없는 농부로 살다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84세였다. 내년 1월17일까지. 3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