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서 다이애나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프레인 제공
박칼린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서 다이애나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프레인 제공
“2009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보고 흥분해서 한국 제작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여기 정말 좋은 작품이 있다’고요. 그때만 해도 제가 이 작품에 출연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박칼린 킥뮤지컬아카데미 예술감독(48)은 지난 16일부터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박 감독은 이 공연에서 조울증으로 고통받는 주인공 다이애나를 연기한다. 그는 “뉴욕에서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다이애나 역을 꼭 해보고 싶었다”며 “음악감독이 아니라 다시 배우로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공연기획사 뮤지컬해븐이 2011년 ‘넥스트 투 노멀’을 제작한다고 발표했을 때 박 감독은 오디션을 봐서 다이애나 역을 따냈다. 1991년 현대극단의 연극 ‘여자의 선택’에 출연한 이후 20년 만에 배우로 무대에 선 것이다. 2013년 재공연에 이어 이번 공연이 다이애나 역으로 세 번째 무대다.

작품은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흔들리는 가족’ 이야기다. 다이애나와 그의 남편 댄, 딸 나탈리가 각자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2009년 토니상 3관왕에 올랐고, 2010년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박 감독은 “주제의식부터 세트, 조명, 의상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20대 초반 부모가 될 준비도 되지 않았을 때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아이가 6개월 만에 죽으면서 다이애나는 해소되지 않는 슬픔에 시달려요. 약도 먹고, 전기충격도 받지만 소용이 없어요. 증세는 점점 악화하고, 다이애나는 가족과 자신을 위해 결단을 내리죠.”

뮤지컬로서 평범한 소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관객에게 어떤 ‘사회적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 공연 때 편지 한 통을 받았어요. 오빠가 어린 시절 죽었는데, 엄마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집에서 아무 말도 안 하셨대요. 그렇게 시간만 흘렀죠. 그러다 우연히 이 작품을 모녀가 보러 왔나 봐요.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모녀가 차를 세우고 세 시간 동안 부둥켜안고 울었대요.”

작품의 제목인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은 ‘평범함, 그 언저리’ 정도로 번역된다. 극이 끝나갈 때쯤 나탈리는 엄마 다이애나에게 말한다. “평범 같은 건 안 바랄게. 그건 너무 머니까. (평범한 것) 그 근처라도 가보고 싶어.”

박 감독은 내년에 뮤지컬 음악감독과 연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다고 했다. 창작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의 음악감독을 맡고,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서태지 음악을 입힌 창작뮤지컬 ‘페스트’를 연출한다. 내년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아이다’의 음악감독도 맡는다. 새 음반도 준비 중이다. “늘 도전을 즐기는 것 같다”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언제나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일해요. 뭐든지 새로 시작하는 일은 겁이 납니다. 남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줘도 저는 늘 똑바로 안 할까봐 전전긍긍하지요. 그래서 스스로를 늘 재촉하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저에게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