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더 가까워졌다는 자폐아 엄마들의 한마디였죠"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https://img.hankyung.com/photo/201512/AA.11045895.1.jpg)
지인 아이 돕겠단 마음으로 앱 제작
“돈 벌려는 것 아니냐” 냉대에도
부모들 일일이 설득하며 영상 찍어
더불어 사는 사회 꿈꾸는 광고쟁이로
올해 각국 광고제서 50여개 상 받아
가장 큰 보람은 앱 이용한 부모들 반응
“프로젝트 끝났어도 자폐아 도울 것”
“주희야, 우리 둘째 수아(가명)가 나랑 눈을 안 마주쳐, 두 살인데 말도 한마디 못해.”
3년 전 이주희 제일기획 차장(사진)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잠시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친하게 지낸 선배였다. 선배는 울먹이고 있었다. 수아는 이 차장도 자주 돌봐준 아이였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수아는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선배는 수아를 돌보느라 첫째 아이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이 차장은 선배를 만나 펑펑 울었다. “선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잘나가는 ‘광고우먼’이던 이 차장의 인생은 ‘자폐’라는 낯선 증상 때문에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아이와 눈 마주치는 게 소원이에요”
자폐증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 기술, 언어, 의사 소통 발달에서 지연되거나 또는 비정상적인 기능을 보이는 장애’다. 두뇌 수준이 정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정신지체를 수반한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어렵다.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갑자기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정확한 원인을 모르고 완치 사례도 없다. 꾸준한 훈련을 통해 사회에 조금씩 적응시키는 방법뿐이다. 가수 김태원 씨는 아들이 자폐증인 것을 고백하며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차장도 수아의 얘기를 듣기 전에는 자폐증이 뭔지 몰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부분 광고회사에서만 일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선배의 딱한 사정이 이 차장의 마음을 바꿨다. 자폐증은 외모는 멀쩡하지만 행동이 이상해 많은 오해를 받는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지도 못한다.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자폐증 환자”라는 게 이 차장의 설명이다.
이 차장은 수아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밤샘이 다반사인 광고회사에 다니며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제일기획의 광고주인 삼성전자에서 ‘론칭 피플’이라는 캠페인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차장은 ‘이때다’ 싶었다. “론칭 피플은 어려운 사람에게 꿈을 찾아주는 캠페인이에요. 자폐증 아이들을 사회에 ‘론칭’하는 콘셉트라면 광고주를 설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일하면서 수아를 도울 수도 있고요.”
그때부터 밤잠을 줄여가며 온갖 자폐증 관련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떠올린 아이디어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자폐증 아이들의 소통 훈련 도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자폐증 아이들이 부모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지만, 스마트폰 게임에는 집중하는 것에 착안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부모와, 세상과 소통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예를 들어 다리를 꼬고 있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준 뒤 똑같은 자세를 취한 엄마의 사진을 찍으면 점수를 주는 식이다. 이 차장은 “아이들은 게임을 즐기면서 자연스레 소통 훈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등 전문가와도 협업했다. 삼성전자에서도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콘셉트를 높게 평가해 ‘론칭 피플’ 아이템으로 채택했다. 그렇게 ‘룩앳미’라는 자폐증 교육용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3년 가을께였다.
상처받은 부모들의 마음을 열다
‘룩앳미’는 치료 목적의 앱이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해야 했다. 병원을 통해 자폐증 아동 부모들을 모았다. 아이들을 돕자는 취지니 부모들이 잘 협조할 줄 알았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삼성이 우리 애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것 아니냐”는 냉대만 돌아왔다.
“자폐 아동 부모들은 상처가 많아요. 아이들이 지능은 멀쩡한데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일반 학교에서 쫓겨나는 사례가 많거든요.”
이 차장은 낮에는 룩앳미 앱을 개발하고, 밤에는 자폐 아동 집을 찾아다녔다. “자폐증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앱을 광고하면 자폐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나아질 것”이라며 부모들을 설득했다. 수아 얘기도 해줬다. 처음엔 차갑던 부모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삼성전자의 사회공헌 캠페인이어서 광고 영상을 찍어야 했다. 안그래도 사람을 무서워하는 자폐증 아이들은 카메라맨이 다가오면 도망가기 바빴다. 인내심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파악한 뒤 조심스레 접근했다. “영상에 나오는 종현이는 TV 프로그램 ‘런닝맨’을 좋아했어요. 런닝맨을 보여주면서 좋아하는 문제도 같이 풀면서 조금씩 가까워졌죠.” 그렇게 지난해 말 룩앳미 앱과 광고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심을 알아준 칸 광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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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룩앳미는 선보이자마자 세계 유수의 광고제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올해 3월 세계적 광고제인 ‘애드페스트’에서 금·은·동상을 휩쓴 것을 비롯해 윈쇼, 뉴욕 페스티벌 등에서도 잇따라 수상했다. 그래도 이 차장은 ‘광고인 인생의 영광’으로 꼽히는 칸 광고제 수상은 기대하지 않았다. “처음엔 칸 광고제 현장에 아예 안 가려고 했어요. 원래 가기로 한 동료가 못 가게 돼 운좋게 가게 됐죠.”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사이버광고 부문에서 금상 등 상 5개를 휩쓸었다. 칸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의외였다. “한 심사위원이 이렇게 말했어요. ‘룩앳미’는 화려한 그래픽이나 연출이 아니라 정말 자폐증을 깊게 배려해 설계한 앱이고 광고여서 높게 평가했다고. 진심을 알아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룩앳미는 올해 광고제에서 50개가 넘는 상을 받았다.
이 차장은 이달 초 룩앳미를 개발한 공로로 ‘자랑스러운 삼성인 상’도 수상했다. 약 30만명의 글로벌 삼성인 중 매년 10여명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다. 수상자는 상금 1억원을 받고 한 직급 특진한다. 기적에 가까운 판매실적을 올리거나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 주로 받는다. 제일기획 디자인부문에서는 이제껏 수상자가 없었다.
칸 광고제보다, 자랑스러운 삼성인 상보다 이 차장을 기쁘게 한 것은 자폐증 부모들의 반응이었다. “한 어머니는 ‘예전엔 학교에 한 달에 다섯 번 불려갔는데 룩앳미로 훈련한 뒤로는 두 번만 불려간다’고 얘기해줬어요. 그만큼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거죠. 다른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이와 가족 같은 사진을 찍었다고도 얘기해줬어요. 아이가 다른 데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가족들과 같은 곳을 바라봤대요. 기쁘고 뿌듯했죠.”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이 차장은 앞으로도 자폐증 가족들을 꾸준히 돕겠다고 했다. 특히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애쓰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영상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영국에서 찍은 일종의 몰래카메라예요. 한 식당에서 산만하게 구는 자폐 아이에게 연기자가 ‘나가라’고 소리지르는 설정이었죠. 그러자 한 남성이 일어나더니 소리지르는 사람에게 ‘우리야말로 당신과 한 식당을 이용할 수 없다, 나가라’고 요청했습니다. 식당 내 다른 사람들도 거들었고요. 자폐증을 특별히 대우해 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우리 사회에서도 이들을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세계 최고 광고제’ 칸…“동상만 타도 일생의 영광”
![홍보영상에서 한 자폐아동이 ‘룩앳미’를 사용하는 모습.](https://img.hankyung.com/photo/201512/AA.11045713.1.jpg)
창설 당시에는 극장용 광고들이 주로 출품됐다. 이후 TV 매체가 발달하면서 대표적인 TV광고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1992년에 인쇄 부문상을, 1998년에 사이버 부문상을, 1999년에는 매체 부문상을 각각 신설했다.
출품 대상은 광고 및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모든 제작물이다. 필름, 인쇄 및 포스터, 미디어, 사이버 부문 등 여러 부문으로 나누어 그랑프리와 금상, 은상, 동상 등을 시상한다. 부문마다 수천에서 수만건의 광고가 출품된다. 칸 광고제나 뉴욕 페스티벌 수상작 수가 해당 광고회사의 역량을 판단하는 지표로 여겨지기 때문에 세계적인 광고회사들이 역량을 총동원한다. 광고업계에서는 칸에서 동상만 타도 ‘일생의 영광’으로 불리기도 한다. ‘룩앳미’는 사이버 부문에서 금상 1개, 모바일 부문에서 은상과 동상 1개, PR 부문 은상 1개, 헬스 부문에서 은상 1개 등 총 5개의 상을 받았다. 상금은 없다. ‘스크린 애드버타이징 월드 어소시에이션’이 주최한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