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엉성한 교통법규…신호위반 '벌점' 받으면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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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칙금 대신 과태료 내면 벌점 면제…
면허 취소 없어 '달리는 흉기' 방치하는 셈
"돈 더 내고 벌점 피하자"…속도위반 99.9%가 과태료 선택
유명무실한 범칙금 제도, 신호 위반·중앙선 침범·갓길 운행…
운전자, 1만~3만원 부담 늘어도 범칙금보다 유리한 과태료 택해
"교통법규 위반 사회적 피해 커 상습범은 강력 처벌해야"
경찰, 되레 과태료 전환 확대 추진
면허 취소 없어 '달리는 흉기' 방치하는 셈
"돈 더 내고 벌점 피하자"…속도위반 99.9%가 과태료 선택
유명무실한 범칙금 제도, 신호 위반·중앙선 침범·갓길 운행…
운전자, 1만~3만원 부담 늘어도 범칙금보다 유리한 과태료 택해
"교통법규 위반 사회적 피해 커 상습범은 강력 처벌해야"
경찰, 되레 과태료 전환 확대 추진
교통법규 위반에 벌점을 부과해 운전면허까지 취소하는 현행 제도가 엉성한 법규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도로교통법 160조는 교통법규 위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 위반, 고속도로 갓길 운행 등에 대해 범칙금이나 과태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범칙금에 1만~3만원을 보태 과태료를 내면 운전면허 취소로 이어지는 벌점을 피할 수 있다. 대다수 위반자가 과태료를 내는 이유다. 무인단속기로 적발된 속도위반자의 99.9%가 범칙금 대신 과태료를 낸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엉성한 법체계로 벌점조항이 유명무실화된 것이다. “기본부터 법 무시 풍조를 자초하는 법체계로 인해 상습 교통법규 위반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교통법규 위반자는 경찰이 제시한 10일 이상의 의견진술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벌점이 없는 과태료를 내게 돼 있다. 범칙금을 내려면 의견진술 기간에 경찰서나 파출소를 찾아 범칙금고지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경찰서를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면서 벌점까지 받을 사람은 거의 없다. 범칙금과 과태료의 차이도 크지 않다. 신호 위반은 범칙금보다 1만원 많은 7만원, 중앙선 침범은 3만원 많은 9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서울 마포에 사는 이모씨(30)가 과태료로 벌점을 피해간 대표적 사례다. 이씨는 올해 무인단속기에 신호위반 세 건, 중앙선 침범 세 건이 적발됐다. 신호위반은 벌점 15점, 중앙선 침범은 벌점 30점인 만큼 합산하면 벌점 135점으로 면허 취소 기준인 121점을 넘었다. 하지만 그는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받지 않았다. 범칙금 대신 과태료를 냈기 때문이다. 이씨는 상습적으로 교통법규를 위반했지만 범칙금(36만원)보다 12만원을 더 내고 면허 취소를 면한 것이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범칙금 부과 처분을 받은 위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범칙금 부과 건수는 2012년 175만98건에서 올해 11월 말까지 467만건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범칙금 부과 금액도 619억5400만원에서 1652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들 위반자 대부분은 범칙금 대신 과태료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위반, 고속도로 갓길 운행 등의 교통법규 위반에 대해 범칙금이나 과태료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어서다.
정세종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무인단속기로 적발된 속도위반자의 99.9%가 과태료 납부를 선택했다. 범칙금은 형벌이나 형사절차를 적용하지 않고 통고 처분을 해 제재하는 형사처분이다. 운전자에게 직접 부과되고 범칙금을 내지 않으면 면허 정지도 가능하다. 이에 비해 과태료는 행정법상의 금전벌로 차주에게 부과된다는 점이 다르다.
과태료 전환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범칙금 납부를 회피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속도로에서 3, 4차로로 운행하게 돼 있는 화물차나 대형 버스가 1, 2차로로 다니다 적발되면 범칙금 3만원에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벌점이 40점을 넘으면 운전면허가 정지된다. 벌점이 범칙금 납부 시점에 부과된다는 점에서 범칙금 납부를 미루면 벌점을 일단 피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몇만원의 범칙금을 걷기 위해 수많은 위반자에 대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면허가 정지되면 생업에 영향을 받다 보니 해당 운전자들은 범칙금 납부 자체를 회피한다”며 “차주에게 위반사실확인 요청서 등을 보내기는 하지만 범칙금 3만원을 걷기 위해 운전자를 체포할 수도 없어 법 집행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는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이처럼 유명무실화된 범칙금제도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문철 교통전문 변호사는 “바보가 아닌 이상 범칙금을 납부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과태료를 범칙금보다 두세 배 무겁게 부과해 함부로 과태료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해야 형평성에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과태료는 법규 위반자를 정확히 가리지 못할 때 자진신고를 늘리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지금은 무인단속기 분석 등 기술이 발달해 운전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가릴 수 있는 만큼 과태료 선택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연수 전주대 경찰행정학과 조교수는 “벌점 10점의 금전적 가치는 약 7만~19만원으로 분석되는데 현재 범칙금 대신 과태료를 선택하는 데 따르는 비용은 1만~3만원에 불과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거꾸로 범칙금 납부를 위한 행정 집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과태료 전환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정차로 위반,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 적재물 추락방지조치 위반 등이 그 대상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상습범 등을 처벌하기 위해 범칙금 규정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차량이 늘어나는 데 비해 교통경찰 인력은 제자리걸음을 해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교통법규 위반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간과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빈집 침입, 흉기 휴대 등 경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범칙금이 적용되는데 교통법규 위반은 사회적 해악이 경범죄보다 더 크다”며 “범칙금을 대폭 올리고 상습범은 강력히 처벌해야 교통문화가 개선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동현/마지혜 기자 3code@hankyung.com
도로교통법 160조는 교통법규 위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 위반, 고속도로 갓길 운행 등에 대해 범칙금이나 과태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범칙금에 1만~3만원을 보태 과태료를 내면 운전면허 취소로 이어지는 벌점을 피할 수 있다. 대다수 위반자가 과태료를 내는 이유다. 무인단속기로 적발된 속도위반자의 99.9%가 범칙금 대신 과태료를 낸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엉성한 법체계로 벌점조항이 유명무실화된 것이다. “기본부터 법 무시 풍조를 자초하는 법체계로 인해 상습 교통법규 위반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교통법규 위반자는 경찰이 제시한 10일 이상의 의견진술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벌점이 없는 과태료를 내게 돼 있다. 범칙금을 내려면 의견진술 기간에 경찰서나 파출소를 찾아 범칙금고지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경찰서를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면서 벌점까지 받을 사람은 거의 없다. 범칙금과 과태료의 차이도 크지 않다. 신호 위반은 범칙금보다 1만원 많은 7만원, 중앙선 침범은 3만원 많은 9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서울 마포에 사는 이모씨(30)가 과태료로 벌점을 피해간 대표적 사례다. 이씨는 올해 무인단속기에 신호위반 세 건, 중앙선 침범 세 건이 적발됐다. 신호위반은 벌점 15점, 중앙선 침범은 벌점 30점인 만큼 합산하면 벌점 135점으로 면허 취소 기준인 121점을 넘었다. 하지만 그는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받지 않았다. 범칙금 대신 과태료를 냈기 때문이다. 이씨는 상습적으로 교통법규를 위반했지만 범칙금(36만원)보다 12만원을 더 내고 면허 취소를 면한 것이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범칙금 부과 처분을 받은 위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범칙금 부과 건수는 2012년 175만98건에서 올해 11월 말까지 467만건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범칙금 부과 금액도 619억5400만원에서 1652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들 위반자 대부분은 범칙금 대신 과태료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위반, 고속도로 갓길 운행 등의 교통법규 위반에 대해 범칙금이나 과태료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어서다.
정세종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무인단속기로 적발된 속도위반자의 99.9%가 과태료 납부를 선택했다. 범칙금은 형벌이나 형사절차를 적용하지 않고 통고 처분을 해 제재하는 형사처분이다. 운전자에게 직접 부과되고 범칙금을 내지 않으면 면허 정지도 가능하다. 이에 비해 과태료는 행정법상의 금전벌로 차주에게 부과된다는 점이 다르다.
과태료 전환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범칙금 납부를 회피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속도로에서 3, 4차로로 운행하게 돼 있는 화물차나 대형 버스가 1, 2차로로 다니다 적발되면 범칙금 3만원에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벌점이 40점을 넘으면 운전면허가 정지된다. 벌점이 범칙금 납부 시점에 부과된다는 점에서 범칙금 납부를 미루면 벌점을 일단 피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몇만원의 범칙금을 걷기 위해 수많은 위반자에 대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면허가 정지되면 생업에 영향을 받다 보니 해당 운전자들은 범칙금 납부 자체를 회피한다”며 “차주에게 위반사실확인 요청서 등을 보내기는 하지만 범칙금 3만원을 걷기 위해 운전자를 체포할 수도 없어 법 집행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는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이처럼 유명무실화된 범칙금제도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문철 교통전문 변호사는 “바보가 아닌 이상 범칙금을 납부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과태료를 범칙금보다 두세 배 무겁게 부과해 함부로 과태료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해야 형평성에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과태료는 법규 위반자를 정확히 가리지 못할 때 자진신고를 늘리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지금은 무인단속기 분석 등 기술이 발달해 운전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가릴 수 있는 만큼 과태료 선택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연수 전주대 경찰행정학과 조교수는 “벌점 10점의 금전적 가치는 약 7만~19만원으로 분석되는데 현재 범칙금 대신 과태료를 선택하는 데 따르는 비용은 1만~3만원에 불과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거꾸로 범칙금 납부를 위한 행정 집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과태료 전환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정차로 위반,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 적재물 추락방지조치 위반 등이 그 대상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상습범 등을 처벌하기 위해 범칙금 규정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차량이 늘어나는 데 비해 교통경찰 인력은 제자리걸음을 해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교통법규 위반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간과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빈집 침입, 흉기 휴대 등 경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범칙금이 적용되는데 교통법규 위반은 사회적 해악이 경범죄보다 더 크다”며 “범칙금을 대폭 올리고 상습범은 강력히 처벌해야 교통문화가 개선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동현/마지혜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