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은 추억과 낭만이 함께하는 장소다. 애잔하고 때로는 쓸쓸한 감정까지 드는 간이역이 최근 문화의 옷을 입고 지역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이야기가 흐르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간이역으로 떠나보자.
주말이 되면 하루 1500여명이 찾는 V트레인의 환승역인 경북 봉화 분천역  코레일 제공
주말이 되면 하루 1500여명이 찾는 V트레인의 환승역인 경북 봉화 분천역 코레일 제공
봉화 분천역

분천역 앞에 설치된 산타모형
분천역 앞에 설치된 산타모형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는 200여명의 주민이 사는 산골마을이다. 적막감이 감돌던 마을이 변화한 것은 2013년부터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분천역이 백두대간협곡열차(V-트레인)의 기착지가 되면서 수많은 여행자가 찾기 시작했다. 중부내륙관광열차 ‘O-트레인’과 ‘V-트레인’의 환승역이 되면서 주말이면 하루 1500여명이 분천역에 찾아온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수백명이 V-트레인을 타기 위해 분천역을 찾는다.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맞아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하면서 분천역 외관도 스위스 샬레 분위기로 단장했다. 체르마트역은 스위스 빙하특급열차가 출발하는 곳으로, V-트레인이 서는 분천역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이 여행자들은 분천역 이곳저곳을 돌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역사에 비치된 기념 스탬프도 찍는다. 여유가 있다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분천마을을 돌거나, 카 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해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떠날 수도 있다. 기차를 타고 분천역에서 내린 여행자들이 친환경 전기자동차를 타고 인근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어 호응이 뜨겁다.

1일 3회 분천과 철암을 왕복 운행하는 V-트레인은 비동, 양원, 승부, 석포를 거치는 동안 백두대간 협곡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세 칸짜리 관광열차다. 분천에서 철암까지 1시간10분 정도 열차를 타는데, 평균 시속 30㎞ 내외로 운행하는 열차에 앉아 창밖으로 펼쳐지는 비경을 즐길 수 있어 주말은 두 달 전에 예약이 끝난다.

보성 득량역

1930년 첫 운행을 시작한 전남 보성의 득량역도 최근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고 있다. 2013년부터 남도해양열차 S-트레인이 다니면서다. 역 주변 거리는 1970~1980년대 시골 번화가의 모습을 재현했다. 초등학교, 문구사, 상회, 다방, 사진관, 이발관, 만화방 등 추억과 향수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역 주변에 딱지치기, 사방치기, 고무줄, 말뚝박기 등 10여가지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추억 놀이터’가 있다. 역 광장에는 롤러스케이트장을 운영하고 있다.

득량역은 세계 최초의 관광 기부역으로 변신했다. 득량역에 설치된 레일바이크 이용요금 중 1000원, 매년 5월 열리는 득량역축제 수익금 등을 모아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을 통해 6·25전쟁 참전국 중 빈곤국인 방글라데시와 몽골 등의 어린이 9명에게 기부할 방침이다. 세계에서 기부하는 기차역은 득량역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모인 기부금은 3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영동 황간역

경부선 철도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충북 영동군 황간역은 한때 석탄 수송용 화물열차가 서는 제법 규모가 큰 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0년대 들어 이용객이 줄면서 급격히 쇠락했다. 한때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15차례 정차해 승객을 맞이하는 한적한 시골 간이역이 됐지만 최근 역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면서 이용객이 하루평균 9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역사 내 승객을 맞는 공간을 갤러리로 꾸며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승강장과 역사 주변을 활용해 아름다운 시화를 걸어놓았다. 황간역 광장에 노란색 자전거 30대를 비치해 기차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