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제 몸에 마디를 만들어 자란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표현이 있듯이 대나무의 성장은 참 빠르다. 그러나 늘 성장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기다리며 마디를 틀어 다음 줄기를 짓기 위한 기초를 꾸민다. 마디가 없다면 미끈하기는 하겠지만 대나무의 재질로 볼 때 충격이나 강한 바람에 휘어지거나 쉽게 부러져 버릴 것이다. 대나무는 그렇게 치밀하고 곧게 자라 예로부터 선비들은 절개(節槪)를 표방하는 사군자(四君子) 반열에 올렸다.

필자에게도 올 한 해는 은행장으로서 굵은 한마디를 짓는 한 해였다. 1월 초 취임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과 부딪히며 미래를 대비할 토대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의욕도 솟아올랐다. 그런 과정에서 다른 업종과의 제휴 비즈니스를 통해 은행의 전통적인 영업채널과 영업시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첫 결실도 보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오랜 시간 은행에서 한솥밥을 먹던 많은 후배들을 떠나보내는 아픔도 있었다. 은행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 절실했고 많은 고민이 함께했다. 수십 년간 은행에서 큰 기여를 하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열기 위해 떠나는 용기를 보여 준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또 더 좋은 은행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남아 있는 직원들을 보면 그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변화하는 모습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 주고 계신 고객들이 더욱 고마운 것은 물론이다. 은행장 취임 때부터 절대 짧은 시간에 결실을 보리라 생각지는 않았다. 마디를 지을 때는 줄기를 함께 올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 더 강한 마디를 틀려 한다. 그래야 그 위에 후배들이 곧고 튼튼한 줄기를 올릴 것이다.

이제 한 갑자를 넘긴 나이에 필자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만들어온 많은 마디가 있음을 느낀다. 젊었을 때는 그것이 마디를 짓는 과정인 줄도 모르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시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를 한 층 더 올려주는 소중한 기간이었음을 느낀다.

이번 원고를 끝으로 ‘한경에세이’ 기고를 모두 마친다. 두 달 남짓 과분하게도 필자의 거친 글을 위해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준 한국경제신문에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독자분들께도 혹시 누가 됐다면 너그러이 용서를 구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기고를 준비하면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감성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마디’를 지어낸 기분이다.

박종복 < 한국SC은행장 jongbok.park@sc.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