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개뿔, 새해 계획은 무슨 계획"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조영남 < 가수 >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젠장, 이게 몇 해째인가. 숫자 놀이는 내 취향이 아니다.
연말이 되면 주변에서 으레 다음 해 계획을 묻곤 한다. 나는 평소 딸이 내게 툭툭 대는 투로 대답한다. “개뿔, 계획은 무슨 계획이냐. 그런 것 없다. 그냥 맥없이 사는 거다.” 이건 내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 풍진 세상을 70해 넘게 살아 봤다. 그렇다면 매년 계획 같은 걸 세워 가며 살았나. 천만의 말씀, 그냥저냥 살아왔을 뿐이다.
사실 시도 때도 없이 계획을 세우긴 한다. 가령 “새해엔 꼭 내 침대 주변의 서랍을 꼭 정리하겠다”는 야무진 계획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게 안 된다. 약간의 시간을 내서 정리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여전히 책이나 필기구, 안경, 시계, 약 부스러기 같은 잡동사니를 정리하지 못한 채 그해를 넘기곤 한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새 옷걸이를 장만하는 문제다. 나는 비교적 큰 아파트에 산다. 옷방이 두 군데 있다. 두 곳 중 작은 옷방의 옷장과 옷걸이가 신경 쓰인다. 매일 아침 샤워를 끝내고 들어가야 하니까.
어느 날 보니 그 옷장엔 세탁소에서 배달돼 온 철사 줄 옷걸이만 가득했다. 옷걸이가 너무 유치해 보여서 좀 굵고 모양새도 있어 보이는 플라스틱제 옷걸이를 사다가 바꿔 놓았다. 그런데 그 옷걸이의 양쪽 끝에 붙은 장식에 옷 끝이 한 번씩 걸렸다. “끝에 장식이 없는 것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또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어쩌다 들른 편의점에서 간편한 모양의 옷걸이가 눈에 띄어 한아름 구입했다. 그런데 이번엔 옷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부착된 특수 장치가 말썽이었다. 옷걸이에서 옷을 뺄 때 한 번에 옷이 쭉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또 한 해를 넘기고 있다.
그러니 기자들이 내게 “새해 계획이 무엇이냐” 아니면 “새해에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마다 내 대답은 매우 시크하고 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뿔, 무슨 계획이 있겠냐. 그딴 것 없이 그냥 산다.” 뭐, 이런 식으로.
한국경제신문의 독자에게 감히 말씀드린다. 내 대답이 무슨 심오한 철학적 답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진짜 생각이 이렇다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내년에도 살아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는 게 사실 아닌가.
조영남 < 가수 >
연말이 되면 주변에서 으레 다음 해 계획을 묻곤 한다. 나는 평소 딸이 내게 툭툭 대는 투로 대답한다. “개뿔, 계획은 무슨 계획이냐. 그런 것 없다. 그냥 맥없이 사는 거다.” 이건 내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 풍진 세상을 70해 넘게 살아 봤다. 그렇다면 매년 계획 같은 걸 세워 가며 살았나. 천만의 말씀, 그냥저냥 살아왔을 뿐이다.
사실 시도 때도 없이 계획을 세우긴 한다. 가령 “새해엔 꼭 내 침대 주변의 서랍을 꼭 정리하겠다”는 야무진 계획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게 안 된다. 약간의 시간을 내서 정리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여전히 책이나 필기구, 안경, 시계, 약 부스러기 같은 잡동사니를 정리하지 못한 채 그해를 넘기곤 한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새 옷걸이를 장만하는 문제다. 나는 비교적 큰 아파트에 산다. 옷방이 두 군데 있다. 두 곳 중 작은 옷방의 옷장과 옷걸이가 신경 쓰인다. 매일 아침 샤워를 끝내고 들어가야 하니까.
어느 날 보니 그 옷장엔 세탁소에서 배달돼 온 철사 줄 옷걸이만 가득했다. 옷걸이가 너무 유치해 보여서 좀 굵고 모양새도 있어 보이는 플라스틱제 옷걸이를 사다가 바꿔 놓았다. 그런데 그 옷걸이의 양쪽 끝에 붙은 장식에 옷 끝이 한 번씩 걸렸다. “끝에 장식이 없는 것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또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어쩌다 들른 편의점에서 간편한 모양의 옷걸이가 눈에 띄어 한아름 구입했다. 그런데 이번엔 옷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부착된 특수 장치가 말썽이었다. 옷걸이에서 옷을 뺄 때 한 번에 옷이 쭉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또 한 해를 넘기고 있다.
그러니 기자들이 내게 “새해 계획이 무엇이냐” 아니면 “새해에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마다 내 대답은 매우 시크하고 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뿔, 무슨 계획이 있겠냐. 그딴 것 없이 그냥 산다.” 뭐, 이런 식으로.
한국경제신문의 독자에게 감히 말씀드린다. 내 대답이 무슨 심오한 철학적 답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진짜 생각이 이렇다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내년에도 살아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는 게 사실 아닌가.
조영남 <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