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자의 자질은 호기심” >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경제학자가 갖춰야 할 자질로 “호기심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학자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어떤 사람은 아주 초기에 큰 업적을 이루지만 나처럼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인정받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기자회견에서도 “평소 믿고 있던 바가 틀린 것으로 입증되더라도 진실에 접근하려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며 “학문에 대한 열정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심기 특파원
< “경제학자의 자질은 호기심” >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경제학자가 갖춰야 할 자질로 “호기심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학자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어떤 사람은 아주 초기에 큰 업적을 이루지만 나처럼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인정받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기자회견에서도 “평소 믿고 있던 바가 틀린 것으로 입증되더라도 진실에 접근하려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며 “학문에 대한 열정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심기 특파원
올 한 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논쟁 중 하나는 불평등과 성장의 상관관계였다. 그 한가운데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사진)이 있었다. 디턴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불평등은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불평등은 삶을 개선하기 위한 인센티브지만, 과도한 불평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가난과 질병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 중순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온 디턴 교수를 프린스턴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공인’받았지만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연구실도 작년 9월 첫 인터뷰 때와 같았다. 디턴 교수는 여전히 연구활동으로 바쁜 모습이었다.

[디턴 교수의 '성장과 불평등론'] "한국 '위대한 탈출' 대표국…가난한 나라에 모범 사례"
▷저서 《위대한 탈출》이 한국에서 재출간됐습니다.

“불평등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도 하고,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한국은 지난 40~50년간 성공적으로 성장해 온 국가입니다. 물론 우려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 책이 그 점에 관해 한국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는 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저자로서 ‘위대한 탈출’의 의미를 직접 한국 독자에게 말해 주십시오.

“위대한 탈출은 질병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류가 이뤄낸 진보(progress)를 뜻합니다. 과거 많은 영아들이 출생 후 다섯 번째 생일을 맞지 못한 채 숨졌습니다. 인류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을 개선시켜 왔습니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위대한 탈출’은 여전히 진행형입니까.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가 여전히 질병과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도 언젠가는 부유한 국가들이 누리는 삶의 기준을 갖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상당한 부를 이룬 한국은 가난한 나라들이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입니다.”

▷한국의 불평등 정도에 대해서 어떻게 봅니까.

“한국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몇몇 사람들이 한국의 불평등이 세계 어느 곳보다 심각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사실이라면 깜짝 놀랄 일입니다. 한국의 데이터들을 간략히 훑어봤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인도, 미국보다 불평등이 더 심하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장과 분배 간 완벽한 균형이라는 것이 존재합니까.

“그것은 각 사회가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은 불평등은 성장의 인센티브입니다. 개인은 누구나 스스로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갈 자유가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시스템입니다. 다만 인센티브만 강조하다 보면 사회안전망을 덜 중시하게 될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까.

“예를 들어 스웨덴은 높은 세금부담을 감수하면서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선택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사회 전체가 이전보다 낮은 성장률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효율과 분배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발전을 이루는 방법은 없습니까.

“성장과 불평등의 상호관계를 단순화,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을 선택할 것인지는 각 나라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최적의 불평등 정도 역시 사회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성장이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성장률이 높으면 많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최하위 계층을 돌보기 위해 상위계층의 몫을 떼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성장이 정체되면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해결이 어렵습니다. 정치를 오염시키죠. 미국과 유럽에서 그런 결과를 지금 보고 있습니다.”

▷저성장이 정치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칩니까.

“정치는 분배의 갈등을 다룹니다. 모든 사람은 더 많은 몫을 받기를 원하지만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심각한 갈등의 상황에 직면합니다. 내가 정치를 ‘오염’시킨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정치가 분배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선진국도 마찬가지인가요.

“성장률이 상당히 오랜 기간 마이너스 상태에 머물면 그 어떤 정당도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와 마린 르펜(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 대표)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장의 정체와 정치적 갈등 간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자본주의의 미래를 비관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나는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경쟁적인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살육하고, 기대수명이 30년이 안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와 비교하면 자본주의가 최악의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비판했습니다.

“개도국에 대한 자금지원은 독재 체제를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 대부분의 개도국 지원이 그런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습니다. 한국도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관련해 비슷한 딜레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에서 ‘금수저(부자 부모를 둔 사람)’ 논란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실버스푼(silver spoon) 논쟁이 있습니다. (소득수준이 비교적 높은)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조차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어렵습니다. 더 부유한 부모들이 자기 자녀가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엄청난 돈을 쓰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위해 타고난 배경이나 연줄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대 간 부와 가난의 대물림에 관한 문제입니다. 과거에 비해 공평한 기회가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기회를 돈으로 사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좋은 학교에 가난한 학생이 다니기 어려워졌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속세를 강화하고 수준 높은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계층 이동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슈입니다. 동등한 기회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평등의 나쁜 점입니다.”

앵거스 디턴 교수 약력

△1945년 영국 에든버러 출생
△197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1976년 영국 브리스톨대 경제학과 교수
△1978년 미국 계량경제학회 프리시메달 수상
△1983년~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2009년 미국경제학회장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프린스턴=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