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즈쿠리로 무장한 일본 기술자, 중소기업에 큰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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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산업기술재단, 일본 퇴직기술자 유치사업
541명 350여개사 파견
조립 과정서 불량 잡고 제조공정 체질도 개선
"한·일 정치적 관계와 달리 경제협력은 수십년 지속"
541명 350여개사 파견
조립 과정서 불량 잡고 제조공정 체질도 개선
"한·일 정치적 관계와 달리 경제협력은 수십년 지속"
1961년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라면 제조에 뛰어들기로 했다. 미군이 먹다 버린 음식으로 만든 ‘꿀꿀이죽’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였다. 일본 묘조식품 본사로 갔다. 기술 확보를 위해서였다. 오쿠이 기요스미 묘조식품 사장은 전 회장에게 “2차대전으로 패망한 일본이 6·25전쟁으로 일어섰으니 빚을 갚을 때”라며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스프 배합 비율은 알려주지 않았다. 좌절하면서 국내로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그때였다. 오쿠이 사장의 비서가 조용히 다가와 봉투를 넘겨줬다. 배합 비율이 들어 있었다.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50여년이 흘렀다. 양국 사이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인들의 교류와 협력은 이어졌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의 ‘일본 퇴직기술자 유치사업’도 그중 하나다. 국내 중소기업은 일본의 장인정신인 ‘모노즈쿠리’로 무장한 기술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불량 잡고 일본에도 수출
지난해 말 다린의 경남 마산 본사 회의실. 품질팀 직원들은 밤늦도록 회의를 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에 새로 납품한 모델에 발생한 불량 때문이었다. 내용물이 새어 나왔고, 몇 번 쓰면 제품이 분리됐다. 납품 취소 얘기까지 나왔다. 김정수 다린 회장이 말했다. “업계 1위인 우리가 못 풀면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일본 기술자에게 자문하는 사업이 있다던데 그거 한번 해봅시다.”
다린은 오카무라 도시히코 씨를 지난 1월 고문으로 데려왔다. 그는 일본 분무기 회사인 캐니온에서 35년간 근무하며 품질관리실장 등을 지냈다. 오카무라 고문은 부품 치수의 편차를 문제로 꼽았다. “조립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회사의 진단과 다른 분석이었다. 주요 부품의 치수를 0.1~0.3㎜씩 조정했다.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일부는 일자에서 둥근 모양으로 바꿨다. 불량이 잡혔다.
회사의 ‘체질개선’에도 힘써줄 것을 부탁했다. 오카무라씨는 제조 공정을 쪼갠 후 개선점을 내놨다. 원자재 창고의 검은 바닥은 밝은 페인트로 칠하게 했다. 이물질이 항상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배합 공정에서는 먼지를 밖으로 빼낼 수 있는 집진설비를 달도록 했다. 조립라인의 조명은 모두 밝은 LED(발광다이오드)로 바꿨다. 전력비도 크게 줄었다. 지게차와 손수레도 내외부용을 철저히 구분해 쓰도록 했다. 전진모 다린 관리이사는 “작은 부분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 제품을 만드는 ‘모노즈쿠리’ 정신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본 수출에도 도움을 줬다. 베셀재팬에 1000만원 상당의 첫 물량을 납품했다. 연간 3억원 규모 계약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리스, 도요뷰티 등과도 수출을 협의 중이다. 전 이사는 “1분기 매출만 9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뛰었다”며 “회사가 10년, 20년 성장할 수 있는 체질 향상에 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새 제품으로 유럽 공략”
원액기를 만드는 엔유씨전자도 일본 퇴직기술자 덕을 톡톡히 봤다. 2013년부터 3년여간 나카니시 요시오 씨와 일했다. 원액기에 들어가는 유성기어 모터 개발을 위해서였다. 그는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모터 회사인 고코정밀을 창업했다. 40년 이상 모터 ‘한우물’을 팠다.
엔유씨전자는 기존에 팔던 가정용 원액기 외에 식당 등에서 쓰는 대용량 제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장시간 무리 없이 돌아가는 모터가 필요했다. 작년 말 3시간 이상 연속 작동이 가능한 모터 개발에 성공했다. 30분 작동이 고작이던 기존 모터의 성능을 크게 개선한 것.
엔유씨전자는 최근 이를 적용한 상업용 원액기를 내놨다. 유럽 수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에 나설 계획이다.
하신호 엔유씨전자 관리팀장은 “국내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술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었다”며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의아했지만 그 ‘고집’이 결국 일류제품을 만들더라”고 했다.
◆퇴직기술자 541명 확보
치과용 임플란트 회사 오스템임플란트도 일본 기술자를 활용했다. 가공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일본 나가노에 있는 현지 중소기업청의 연구시설도 외국회사 최초로 썼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통해 얻던 데이터를 손쉽게 얻었다.
환경측정장비회사인 과학기술분석센타는 30여년간 센서 설계를 한 미와 아키히데 씨(71)의 조언을 받았다. 악취 모니터링 장치, 절연유 용존가스 모니터링 장치 등을 내놨다. 기계 부품인 황동봉을 만드는 국일신동은 도금 후 흑점 및 스크래치가 발생하던 문제를 풀었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은 2008년부터 일본 퇴직기술자를 국내 중소기업에 소개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에서 총 541명의 기술자를 확보해 350여개 회사에 파견했다. 재단이 총비용의 40%를 지원한다. 이종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는 “일본에서 한우물을 판 기술자들은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쓸 수 있는 자원”이라고 말했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
50여년이 흘렀다. 양국 사이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인들의 교류와 협력은 이어졌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의 ‘일본 퇴직기술자 유치사업’도 그중 하나다. 국내 중소기업은 일본의 장인정신인 ‘모노즈쿠리’로 무장한 기술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불량 잡고 일본에도 수출
지난해 말 다린의 경남 마산 본사 회의실. 품질팀 직원들은 밤늦도록 회의를 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에 새로 납품한 모델에 발생한 불량 때문이었다. 내용물이 새어 나왔고, 몇 번 쓰면 제품이 분리됐다. 납품 취소 얘기까지 나왔다. 김정수 다린 회장이 말했다. “업계 1위인 우리가 못 풀면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일본 기술자에게 자문하는 사업이 있다던데 그거 한번 해봅시다.”
다린은 오카무라 도시히코 씨를 지난 1월 고문으로 데려왔다. 그는 일본 분무기 회사인 캐니온에서 35년간 근무하며 품질관리실장 등을 지냈다. 오카무라 고문은 부품 치수의 편차를 문제로 꼽았다. “조립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회사의 진단과 다른 분석이었다. 주요 부품의 치수를 0.1~0.3㎜씩 조정했다.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일부는 일자에서 둥근 모양으로 바꿨다. 불량이 잡혔다.
회사의 ‘체질개선’에도 힘써줄 것을 부탁했다. 오카무라씨는 제조 공정을 쪼갠 후 개선점을 내놨다. 원자재 창고의 검은 바닥은 밝은 페인트로 칠하게 했다. 이물질이 항상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배합 공정에서는 먼지를 밖으로 빼낼 수 있는 집진설비를 달도록 했다. 조립라인의 조명은 모두 밝은 LED(발광다이오드)로 바꿨다. 전력비도 크게 줄었다. 지게차와 손수레도 내외부용을 철저히 구분해 쓰도록 했다. 전진모 다린 관리이사는 “작은 부분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 제품을 만드는 ‘모노즈쿠리’ 정신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본 수출에도 도움을 줬다. 베셀재팬에 1000만원 상당의 첫 물량을 납품했다. 연간 3억원 규모 계약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리스, 도요뷰티 등과도 수출을 협의 중이다. 전 이사는 “1분기 매출만 9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뛰었다”며 “회사가 10년, 20년 성장할 수 있는 체질 향상에 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새 제품으로 유럽 공략”
원액기를 만드는 엔유씨전자도 일본 퇴직기술자 덕을 톡톡히 봤다. 2013년부터 3년여간 나카니시 요시오 씨와 일했다. 원액기에 들어가는 유성기어 모터 개발을 위해서였다. 그는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모터 회사인 고코정밀을 창업했다. 40년 이상 모터 ‘한우물’을 팠다.
엔유씨전자는 기존에 팔던 가정용 원액기 외에 식당 등에서 쓰는 대용량 제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장시간 무리 없이 돌아가는 모터가 필요했다. 작년 말 3시간 이상 연속 작동이 가능한 모터 개발에 성공했다. 30분 작동이 고작이던 기존 모터의 성능을 크게 개선한 것.
엔유씨전자는 최근 이를 적용한 상업용 원액기를 내놨다. 유럽 수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에 나설 계획이다.
하신호 엔유씨전자 관리팀장은 “국내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술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었다”며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의아했지만 그 ‘고집’이 결국 일류제품을 만들더라”고 했다.
◆퇴직기술자 541명 확보
치과용 임플란트 회사 오스템임플란트도 일본 기술자를 활용했다. 가공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일본 나가노에 있는 현지 중소기업청의 연구시설도 외국회사 최초로 썼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통해 얻던 데이터를 손쉽게 얻었다.
환경측정장비회사인 과학기술분석센타는 30여년간 센서 설계를 한 미와 아키히데 씨(71)의 조언을 받았다. 악취 모니터링 장치, 절연유 용존가스 모니터링 장치 등을 내놨다. 기계 부품인 황동봉을 만드는 국일신동은 도금 후 흑점 및 스크래치가 발생하던 문제를 풀었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은 2008년부터 일본 퇴직기술자를 국내 중소기업에 소개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에서 총 541명의 기술자를 확보해 350여개 회사에 파견했다. 재단이 총비용의 40%를 지원한다. 이종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는 “일본에서 한우물을 판 기술자들은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쓸 수 있는 자원”이라고 말했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