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저성장보다 걱정스러운 '히스테리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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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개혁과 혁신 고통스럽다지만 늦어질수록 더 괴로울 뿐
이른 아침 기회의 강을 건너려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길 떠나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이른 아침 기회의 강을 건너려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길 떠나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히스테리시스(Hysteresis)라는 용어가 있다. 독일 물리학자 에밀 바르부르크가 체계화한 용어다. 우리말로는 ‘이력(履歷)현상’이라고 하는데 물질의 성격은 경과해온 이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쇠처럼 강자성체는 자기장을 가하면 자석의 성질을 띠게 되는데 자기장을 제거한 뒤에도 자석의 성격이 남게 된다. 이를 ‘자기 히스테리시스’라고 한다. 탄성체의 경우도 일정 수준 이상의 탄성을 가하면 제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데 이는 ‘탄성 히스테리시스’라고 한다.
경제학자들이 이 용어를 원용하기 시작한 것은 장기 불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불황을 겪다 보면 경제가 자신감을 잃게 되고, 그 결과 여건이 나아져도 경기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에 대한 경험이 경제 주체의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쳐 성장을 잠재성장력보다 축소시킨다는 얘기다. 1980년대 미국의 불경기나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을 설명할 때 종종 등장하는 단어다.
요즘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 히스테리시스다. 주변을 둘러보라. 저성장 기조를 당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예상 외로 많다. 수출 감소와 내수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일본식 장기 불황은 불가피하다고 말이다.
하긴 한국은행이 발표한 잠재성장률 추정치(2015~2018년)가 3~3.2%다. 향후 3년 동안(2016~2018년) 물가안정 목표는 연 2%다. 중앙은행이 저성장·저물가 시대의 고착화를 예고하고 있으니 비관론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개념 자체가 틀렸다. 성장세가 둔화된다는 것은 과거와 같은 고성장이 어려워졌다는 얘기일 뿐이다. 결코 2~3%대 성장에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장이 불가능하니 이대로 살자는 분위기라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2~3% 성장에 만족한다면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경제 주체들의 히스테리시스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실업률에도 잡히지 않는 구직 포기자 수가 50만명을 넘어섰고 폐업이 급증하면서 자영업자 수마저 급감하고 있다. ‘흙수저’ 타령만 난무할 뿐이다.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들이 자신감을 잃은 건 오래전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고작 연매출 5000억원짜리 면세점 사업을 놓고 머리가 터지게 싸운 게 작금의 현실이다. 기업가 정신은 없다.
정부는 단기부양책에 급급할 뿐이다. 경제 주체들이 모두 히스테리시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국회는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법안들을 여전히 깔아뭉개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저서 《이단의 경제학》에서 히스테리시스의 부작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랫동안 실업 상태로 있다 보면 대인관계 능력을 비롯한 직무 능력을 상실해 생산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기술을 배우는 데 투자도 하지 않는다. 이런 히스테리시스는 고실업이 오래 지속된 뒤 실업률을 낮추기 힘들어지는 원인이 된다는 설명이다.
우리 경제도 주변 여건이 나아져도 회복되기 어려운 깊은 늪에 빠질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이라도 경제 주체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구조개혁과 혁신에 나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잃어버린 20년을 겪고도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가 타산지석이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대우증권을 품에 안은 뒤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저성장은 물론 저출산 고령화 등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답은 투자에 있다고 말이다. 투자를 했는데 잘 안됐다면 그건 방향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투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스스로가 맨손 창업 18년 만에 자수성가한 기업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옳은 얘기다.
구조개혁과 혁신은 힘들고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 이른 아침 기회의 강을 건너려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길을 떠나야 한다. 모두가 공포에 떨며 움츠릴 때 적극 대응해서 성장 발판을 선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움츠리고 있으면 기회도 없다. 더 이상 추위에 움츠리지 말자. 길을 떠나야 할 때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경제학자들이 이 용어를 원용하기 시작한 것은 장기 불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불황을 겪다 보면 경제가 자신감을 잃게 되고, 그 결과 여건이 나아져도 경기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에 대한 경험이 경제 주체의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쳐 성장을 잠재성장력보다 축소시킨다는 얘기다. 1980년대 미국의 불경기나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을 설명할 때 종종 등장하는 단어다.
요즘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 히스테리시스다. 주변을 둘러보라. 저성장 기조를 당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예상 외로 많다. 수출 감소와 내수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일본식 장기 불황은 불가피하다고 말이다.
하긴 한국은행이 발표한 잠재성장률 추정치(2015~2018년)가 3~3.2%다. 향후 3년 동안(2016~2018년) 물가안정 목표는 연 2%다. 중앙은행이 저성장·저물가 시대의 고착화를 예고하고 있으니 비관론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개념 자체가 틀렸다. 성장세가 둔화된다는 것은 과거와 같은 고성장이 어려워졌다는 얘기일 뿐이다. 결코 2~3%대 성장에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장이 불가능하니 이대로 살자는 분위기라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2~3% 성장에 만족한다면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경제 주체들의 히스테리시스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실업률에도 잡히지 않는 구직 포기자 수가 50만명을 넘어섰고 폐업이 급증하면서 자영업자 수마저 급감하고 있다. ‘흙수저’ 타령만 난무할 뿐이다.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들이 자신감을 잃은 건 오래전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고작 연매출 5000억원짜리 면세점 사업을 놓고 머리가 터지게 싸운 게 작금의 현실이다. 기업가 정신은 없다.
정부는 단기부양책에 급급할 뿐이다. 경제 주체들이 모두 히스테리시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국회는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법안들을 여전히 깔아뭉개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저서 《이단의 경제학》에서 히스테리시스의 부작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랫동안 실업 상태로 있다 보면 대인관계 능력을 비롯한 직무 능력을 상실해 생산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기술을 배우는 데 투자도 하지 않는다. 이런 히스테리시스는 고실업이 오래 지속된 뒤 실업률을 낮추기 힘들어지는 원인이 된다는 설명이다.
우리 경제도 주변 여건이 나아져도 회복되기 어려운 깊은 늪에 빠질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이라도 경제 주체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구조개혁과 혁신에 나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잃어버린 20년을 겪고도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가 타산지석이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대우증권을 품에 안은 뒤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저성장은 물론 저출산 고령화 등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답은 투자에 있다고 말이다. 투자를 했는데 잘 안됐다면 그건 방향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투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스스로가 맨손 창업 18년 만에 자수성가한 기업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옳은 얘기다.
구조개혁과 혁신은 힘들고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 이른 아침 기회의 강을 건너려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길을 떠나야 한다. 모두가 공포에 떨며 움츠릴 때 적극 대응해서 성장 발판을 선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움츠리고 있으면 기회도 없다. 더 이상 추위에 움츠리지 말자. 길을 떠나야 할 때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