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기획재정부 천하
‘더 크게 상상하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16 세계 경제 대전망’에서 올해는 새로운 야망들이 몰려올 것이라며 쓴 표현이다. 세계 최대 항공기 스트래토런치(Stratolaunch), 세계 최대 배터리 공장 기가팩토리(Gigafactory) 등을 예로 들며 ‘테크 슈퍼 사이클’이 무르익을 것으로 내다봤다.

주목할 것은 이 거대 기술 프로젝트가 기업가의 아이디어·지원에 힘입었거나 기업가가 직접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주 개발 경쟁만 해도 그렇다. 더 이상 정부 영역이 아님을 보여주는 게 실리콘밸리의 확장성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올해 주목받을 기술이라는 드론, 무선충전기, 무선이어폰, 가상현실 헤드셋, 3차원(3D)카메라, 음성인식 기기 등도 마찬가지다. 상상을 삶의 현장으로 끌고 들어오는 건 기업가들이다.

너무 다른 창조경제

첨단기업일수록 신경망 같은 조직구조를 실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미래와 진화의 열쇠라는 이른바 ‘창발성(emergence)’에 걸맞은 분권적, 상향식 지능에 목말라한다. 경직된 계급조직 모델로는 혁신을 추구하기도, 갑작스런 변화가 닥쳤을 때 적응력을 발휘하기도 어렵다고 판단 내린 것이다. 이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기획·목표 제시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빠른 감지, 창의적인 아이디어 창출을 격려하는 쪽으로 간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창조경제가 뭔지 꿰뚫고 있는 것 같다.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과 자유방임주의를 연관시키며 새로운 혁명에 맞게 정부가 확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말한다. ‘뷰로크라시(bureaucracy)’에서 ‘포스트뷰로크라시(post-bureaucracy)’로 가야 한다고. 탈(脫)관료제다. 규제개혁, 공무원 수 줄이기 등도 이런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똑같이 창조경제를 외치는 한국은 어떤가. 현 정부에서 주목받을 것이라던 미래창조과학부는 존폐론에 시달린다. 이름만 다를 뿐 과거에 하던 식으로 하니 먹힐 리 없다. 오히려 ‘기획’이란 이름을 단 기획재정부가 슈퍼파워로 등극한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멀쩡한 부처 놔두고 연구개발정책, 산업정책 등이 속속 기재부 손아귀로 넘어가는 양상이다. 기재부는 타 부처 장·차관 공급지가 된 것도 부족한지 공공개혁을 한다면서 자신들 조직은 계속 늘린다.

반복되는 ‘중장기’ 타령

여기에 때마다 터지는 사고는 컨트롤타워론으로 이어진다. 뷰로크라시에 힘을 더해주고, 기획에 예산권을 쥔 기재부를 더 무소불위로 만든다. 계층화의 질주요, 집중화의 완성이다. 탈추격을 말하면서 추격 시대로 회귀하는 건 뭔가.

기재부는 미래전략기획국에 중장기전략위원회까지 두고 있다. 맘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미래니 비전이니 하는 건 정치의 영역이다. 불행히도 한국 정치가 3류, 4류라는 건 국민이 알지만 그렇다고 관료들이 국가 미래를 기획하자고 나서는 게 시대에 맞는지도 의문이다.

백보를 양보해 보고서 제안대로 하면 또 모르겠다.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소리는 똑같은데 실천이 없다.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지난해 말 내놨다는 ‘중장기 경제발전전략’만 해도 그렇다. 관료가 아닌 현장을 잘 아는 기업이 경제를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 해도 시원찮을 일이 왜 맨날 중장기 과제인지. 기재부 천하라서 그런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