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는 것보다 쉬면서 받는 구직급여(실업급여)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실업급여 상·하한액을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안돼서다. 이달 들어 퇴직하는 근로자의 실업급여 하한액(월 130만2480원)이 최저임금(월 126만270원)보다 많아지면서 재취업을 돕겠다는 실업급여의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고용보험법의 하루 실업급여 상한액은 4만3000원,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지난해 4만176원)다. 개정안은 하루 실업급여 상한액을 5만원으로 올리고,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로 낮추는 내용이 핵심이다. 실업급여 하한액은 지난해 4만176원이었으나,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4만3416원으로 올라갔다. 이는 올해 실업급여 하한액이 현재 상한액(4만3000원)보다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우려했던 역전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 근로자가 실직한 뒤 재취업 활동을 하는 기간에 정부가 지급하는 소정의 급여로, 고용보험 적용 사업장에서 18개월간 180일 이상을 근무했다면 퇴직 전 3개월간 평균 임금의 50%를 근무 기간과 연령에 따라 90~240일간 지급한다.

법 개정으로 실업급여 상한액이 높아지거나, 하한액이 낮춰지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상·하한액 모두 하루 4만3416원의 단일액으로 지급할 수밖에 없다고 고용노동부는 3일 밝혔다.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올해 퇴직하는 근로자가 퇴직 전 월급을 얼마나 받았는지와 무관하게 모두 4만3416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고용보험법 개정안에는 자활사업 참여자와 건설일용노동자에 대한 수급 범위를 넓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법 개정 지연으로 생계급여 외에 의료·주거급여만 받는 자활사업 참여자가 실업급여 적용 대상에서 빠지고 건설일용근로자의 실업급여 수급 차질도 우려된다.

권기섭 고용부 고용서비스정책관은 “개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올해 퇴직자들에 대한 실업급여 단일액 적용이 불가피하다”며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구조조정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해 하루빨리 입법이 마무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