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동 일대 농지를 정부에 빼앗긴 주민들이 재심에 재심(확정판결에 오류가 있어 다시 재판하는 것)을 거친 끝에 50년 만에 승소했다. 대법원은 재심을 인정한 판단 근거가 잘못된 것이라면 재재심도 가능하다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옛 구로동 농지 주인들의 유족 채모씨(70) 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재재심에서 재심의 국가 승소 판결을 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발표했다.

이 사건의 구로동 일대 토지(구로동 172의 2)는 원래 일본이 1942~1943년 군용지로 쓰겠다며 강제로 수용한 땅이다. 1950년 농지개혁법 개정으로 농민들에게 분배됐는데 정부는 1953년부터 다시 국유지라며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1961년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 명목으로 구로동 일대 약 100만㎡ 부지의 판잣집을 철거하고 공단과 주택용지 등을 조성했다. 농민들은 1960년대 중반 농지를 돌려달라며 9건의 민사소송을 내 대부분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에 서울지방검찰청은 대대적인 소송사기 수사에 착수했다. “농지 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며 농민들뿐만 아니라 농림부 등 각급 기관의 농지 담당 공무원들까지 구속수사했다. 1968~1970년 143명이 체포·구속됐다가 소송이나 권리를 포기한다고 약속하고 석방됐고 41명은 재판에 넘겨졌다. 정부가 수사와 함께 진행한 민사소송 재심은 형사재판이 끝난 1984년부터 재개됐고 국가가 대부분 승소했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 규명에 나섰다. 위원회 결정을 토대로 23명이 재심을 청구해 무죄가 확정됐다. 이들은 무죄 판결을 근거로 민사소송 재심을 다시 심리해 달라며 재재심을 청구했다. 재재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재심의 기초가 된 형사 판결이 무죄로 바뀌는 등 재심 사유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재판 판결을 취소하고 종전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고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번 재재심 원고들이 소유권을 주장한 땅은 1만4962㎡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땅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1996년 시행된 농지법이 분배농지 등기를 3년 이내에 마치도록 규정했고 현재 토지 소유주의 등기부 취득시효가 완성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