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이어령 "360도 방향으로 뛰면 모두 1등인데 '경제적 금수저'에만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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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만난사람 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주관적 행복보다 타인의 시선만 의식해 불행
한류는 '문화 신대륙'…인문학으로 뒷받침해야 '롱런'
이젠 문화가 경제 '앞바퀴'…문화소비엔 한계 없어
서로 다름 인정하는 '톨레랑스'로 진영논리 극복해야
만난사람 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주관적 행복보다 타인의 시선만 의식해 불행
한류는 '문화 신대륙'…인문학으로 뒷받침해야 '롱런'
이젠 문화가 경제 '앞바퀴'…문화소비엔 한계 없어
서로 다름 인정하는 '톨레랑스'로 진영논리 극복해야
“남들이 천재라기에 서른 살이 되면 죽을 줄 알았어요. 우리 시대에는 ‘천재병’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근데 서른이 돼도 안 죽는 거예요. 그래서 ‘아, 내가 천재가 아니구나’ 했지요. 하하.”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83·전 문화부 장관)을 지난해 12월23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만났다. 이 이사장은 “오늘이 마침 내 생일(음력)”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0대부터 지금까지 그는 평생을 문필가, 문화이벤트 창조자로서 쉼 없이 달려왔다. 최근 ‘작은 수술’을 받아 얼굴은 다소 초췌했지만 번뜩이는 통찰력, 한 번 시작하면 화수분처럼 끝이 없는 이야기의 샘은 여전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가로질러 사유하며 사회의 변화와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의 근원이 궁금했다.
▷지난해에만 책을 다섯 권이나 썼습니다. 도무지 쉬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남들은 왜 저한테 안 쉬느냐고 하는데 제겐 글 쓰고 생각하는 게 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하고는 정반대예요. 여름에 해수욕장에 가거나 여행을 가는 게 더 고통스러워요.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이 말년의 휴식이 아닌가 싶어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행복하시겠어요.
“요즘 젊은 청년들이 금수저, 흙수저 하는데 그건 젊은 사람들이 할 소리가 아니에요. 제가 재벌 총수를 부러워할 것 같아요? 전혀 안 부럽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권력과 돈을 추구하지 않으면 그 방면에서 성공하는 사람을 금수저라고 보겠어요? 이 세상엔 금수저도, 흙수저도 없어요. 배우는 얼굴이 잘 생긴 게 금수저요, 양궁선수는 부모한테 타고난 활쏘는 능력이 금수저입니다. 직업도 죽지 못해 일하는 사람에겐 흙수저지만 정말 좋아하고 취미와 가치가 일치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겐 금수저가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가치관이 중요하겠군요.
“저는 평생을 글을 쓰며 살았습니다. 글을 써서 버는 돈은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돈을 기준으로 한다면 금수저가 되기 어렵지요. 그러나 어릴 때부터 ‘문필가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평생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니 다른 기준으로는 행복한 사람이지요. 경제적인 잣대만으로 금수저와 흙수저를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격차가 커져서 금수저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닐까요.
“아무리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져도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는 못 만듭니다. 객관적·기계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이상적인 것입니다. 풀 하나를 보더라도 큰 풀, 작은 풀이 있듯이 말이죠. 지금 한국에 제일 필요한 것은 다양한 가치예요. ‘대통령, 재벌은 시켜준다고 해도 난 안 한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야 경쟁도 덜해집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뛰면 1등이 한 명뿐이지만, 360도로 뛰면 360명이 1등을 할 수 있어요.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온 국민이 빨리 행복해지는 길이에요.”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는 것이 현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타인지향사회’라 그렇습니다.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를 기억하지요? 그 후일담이 있습니다. 여우 한 마리가 겨우 나무에 올라가 적포도를 따먹었는데, 웬걸 신포도였더랍니다. 그런데 다른 여우들이 이를 부러워하자 신포도라고 말도 못하고 행복한 척 계속 신포도를 따 먹다 위궤양에 걸려 죽었답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렇습니다.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남이 나를 행복하다고 봐주기를 바라는 거지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부터 최근의 《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선생님만의 독특한 통찰을 담은 문화론을 잇달아 내놓으셨는데요.
“사람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높은 사람이 하는 말만 맞고 자신의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 생각은 잘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은 잘못된 거예요. 아무리 위대한 칸트나 마르크스가 온다고 해도 나는 내 생각을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가위바위보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젓가락 모르는 사람도 없지요. 근데 왜 지금까지 이것과 관련한 책이 아시아에서 한 권도 나오지 않았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학교에서도 과거의 사상을 공부하는 사상가보다는 ‘지금 생각하는’ 사고가(thinker)를 길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경제학은 가르치지만 자신의 생각을 토대로 경제를 사고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아요.”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문화부 장관이 되자마자 이야기한 것이 ‘문화제일주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문화는 경제의 ‘뒷바퀴’ 역할만 해왔습니다. 이제 문화가 경제의 ‘앞바퀴’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필요가 늘어도 냉장고를 수백 개 살 사람은 없어요. 문화는 다릅니다. 《해리포터》 같은 소설은 한 부도 안 나갈 수도 있지만, 전 세계 70억명에게 팔려나갈 수도 있어요.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사랑’이 자본주의 체제가 출현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합니다. 문화도 마찬가지예요. 문화는 수요를 창출하는 인간의 욕망을 창출합니다.”
▷문화의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할까요.
“한국은 전통적으로 민중의 문화 의식이 높습니다. 찻집 이름이 ‘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고, 미용실 이름이 ‘깎을래 볶을래’예요. 이름 하나를 지어도 이렇게 재치가 넘치는데, 이게 바로 문화입니다. 관(官) 주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게 정부나 문화융성위원회가 한 일인가요? 정부는 그저 멍석만 깔아주면 됩니다.”
▷한류 열풍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류는 새롭습니다. ‘디즈니랜드’는 이제 식상하지만 한류는 이제 막 유전을 새로 파내는 문화니까요. ‘문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지요. 우리 문화 콘텐츠의 유압이 세서 쭉쭉 뻗어 올라갑니다. 문제는 지금 이 추세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입니다. 10년 유지할 수 있는 유전을 1년 가서 문을 닫게 할 수도 있습니다. 히트작이 줄줄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기초공사’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콘텐츠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의 기반이 약하니까요.”
▷노동개혁 등을 둘러싼 갈등이 ‘진영논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가 열두 살 때 해방이 됐습니다. 진영논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토론도 필요 없습니다. 진영만 짜면 되니까요. 모여서 백날 이야기해도 결론은 늘 정해져 있습니다. 토론하는 교육, 다양성, 톨레랑스(관용)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지난해에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양쪽이 역사를 ‘독점’하려고 해서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좌파든, 우파든 획일적 역사 해석이 아니라 다양한 교과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지 교과서가 일방적으로 ‘역사란 이런 것이다’라고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 교과서는 학술 서적과는 다릅니다. 역사에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건 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이고, 교과서에는 어느 정도 합의된 역사를 기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중·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지금 이대로라면 ‘중국의 아시아’ ‘일본의 아시아’가 돼 한국이 종속되고 맙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불리합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안에서 치고받고 싸울 때가 아닙니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일도 하고, 힘을 내야 합니다. ‘동북아’라는 단어 대신 ‘한·중·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동북아’라는 표현이 굳어지는 순간 한국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마니까요.”
이어령 이사장은
스물세 살 때인 1956년 김동리 등 당대 문단의 대가들을 공개 비판한 칼럼 ‘우상의 파괴’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1962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의 본질 등에 대한 통찰력을 선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했다.
이어령 이사장은 60년 가까이 국문학자·문화학자·기호학자·소설가로서 끊임없이 글을 썼다. 1982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서는 일본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줬다. 2006년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digilog)’의 시대를 선언했다. 최근에도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 등을 출간하는 등 끝없는 지적 탐색과 식을 줄 모르는 집필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1933년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 및 대학원 졸업 △단국대 국문학 박사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화여대 문리대학 교수 △‘문학사상’ 창간 주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연출 △초대 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석좌교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현)
정리=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83·전 문화부 장관)을 지난해 12월23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만났다. 이 이사장은 “오늘이 마침 내 생일(음력)”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0대부터 지금까지 그는 평생을 문필가, 문화이벤트 창조자로서 쉼 없이 달려왔다. 최근 ‘작은 수술’을 받아 얼굴은 다소 초췌했지만 번뜩이는 통찰력, 한 번 시작하면 화수분처럼 끝이 없는 이야기의 샘은 여전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가로질러 사유하며 사회의 변화와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의 근원이 궁금했다.
▷지난해에만 책을 다섯 권이나 썼습니다. 도무지 쉬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남들은 왜 저한테 안 쉬느냐고 하는데 제겐 글 쓰고 생각하는 게 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하고는 정반대예요. 여름에 해수욕장에 가거나 여행을 가는 게 더 고통스러워요.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이 말년의 휴식이 아닌가 싶어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행복하시겠어요.
“요즘 젊은 청년들이 금수저, 흙수저 하는데 그건 젊은 사람들이 할 소리가 아니에요. 제가 재벌 총수를 부러워할 것 같아요? 전혀 안 부럽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권력과 돈을 추구하지 않으면 그 방면에서 성공하는 사람을 금수저라고 보겠어요? 이 세상엔 금수저도, 흙수저도 없어요. 배우는 얼굴이 잘 생긴 게 금수저요, 양궁선수는 부모한테 타고난 활쏘는 능력이 금수저입니다. 직업도 죽지 못해 일하는 사람에겐 흙수저지만 정말 좋아하고 취미와 가치가 일치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겐 금수저가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가치관이 중요하겠군요.
“저는 평생을 글을 쓰며 살았습니다. 글을 써서 버는 돈은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돈을 기준으로 한다면 금수저가 되기 어렵지요. 그러나 어릴 때부터 ‘문필가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평생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니 다른 기준으로는 행복한 사람이지요. 경제적인 잣대만으로 금수저와 흙수저를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격차가 커져서 금수저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닐까요.
“아무리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져도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는 못 만듭니다. 객관적·기계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이상적인 것입니다. 풀 하나를 보더라도 큰 풀, 작은 풀이 있듯이 말이죠. 지금 한국에 제일 필요한 것은 다양한 가치예요. ‘대통령, 재벌은 시켜준다고 해도 난 안 한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야 경쟁도 덜해집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뛰면 1등이 한 명뿐이지만, 360도로 뛰면 360명이 1등을 할 수 있어요.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온 국민이 빨리 행복해지는 길이에요.”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는 것이 현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타인지향사회’라 그렇습니다.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를 기억하지요? 그 후일담이 있습니다. 여우 한 마리가 겨우 나무에 올라가 적포도를 따먹었는데, 웬걸 신포도였더랍니다. 그런데 다른 여우들이 이를 부러워하자 신포도라고 말도 못하고 행복한 척 계속 신포도를 따 먹다 위궤양에 걸려 죽었답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렇습니다.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남이 나를 행복하다고 봐주기를 바라는 거지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부터 최근의 《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선생님만의 독특한 통찰을 담은 문화론을 잇달아 내놓으셨는데요.
“사람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높은 사람이 하는 말만 맞고 자신의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 생각은 잘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은 잘못된 거예요. 아무리 위대한 칸트나 마르크스가 온다고 해도 나는 내 생각을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가위바위보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젓가락 모르는 사람도 없지요. 근데 왜 지금까지 이것과 관련한 책이 아시아에서 한 권도 나오지 않았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학교에서도 과거의 사상을 공부하는 사상가보다는 ‘지금 생각하는’ 사고가(thinker)를 길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경제학은 가르치지만 자신의 생각을 토대로 경제를 사고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아요.”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문화부 장관이 되자마자 이야기한 것이 ‘문화제일주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문화는 경제의 ‘뒷바퀴’ 역할만 해왔습니다. 이제 문화가 경제의 ‘앞바퀴’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필요가 늘어도 냉장고를 수백 개 살 사람은 없어요. 문화는 다릅니다. 《해리포터》 같은 소설은 한 부도 안 나갈 수도 있지만, 전 세계 70억명에게 팔려나갈 수도 있어요.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사랑’이 자본주의 체제가 출현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합니다. 문화도 마찬가지예요. 문화는 수요를 창출하는 인간의 욕망을 창출합니다.”
▷문화의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할까요.
“한국은 전통적으로 민중의 문화 의식이 높습니다. 찻집 이름이 ‘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고, 미용실 이름이 ‘깎을래 볶을래’예요. 이름 하나를 지어도 이렇게 재치가 넘치는데, 이게 바로 문화입니다. 관(官) 주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게 정부나 문화융성위원회가 한 일인가요? 정부는 그저 멍석만 깔아주면 됩니다.”
▷한류 열풍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류는 새롭습니다. ‘디즈니랜드’는 이제 식상하지만 한류는 이제 막 유전을 새로 파내는 문화니까요. ‘문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지요. 우리 문화 콘텐츠의 유압이 세서 쭉쭉 뻗어 올라갑니다. 문제는 지금 이 추세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입니다. 10년 유지할 수 있는 유전을 1년 가서 문을 닫게 할 수도 있습니다. 히트작이 줄줄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기초공사’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콘텐츠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의 기반이 약하니까요.”
▷노동개혁 등을 둘러싼 갈등이 ‘진영논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가 열두 살 때 해방이 됐습니다. 진영논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토론도 필요 없습니다. 진영만 짜면 되니까요. 모여서 백날 이야기해도 결론은 늘 정해져 있습니다. 토론하는 교육, 다양성, 톨레랑스(관용)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지난해에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양쪽이 역사를 ‘독점’하려고 해서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좌파든, 우파든 획일적 역사 해석이 아니라 다양한 교과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지 교과서가 일방적으로 ‘역사란 이런 것이다’라고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 교과서는 학술 서적과는 다릅니다. 역사에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건 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이고, 교과서에는 어느 정도 합의된 역사를 기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중·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지금 이대로라면 ‘중국의 아시아’ ‘일본의 아시아’가 돼 한국이 종속되고 맙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불리합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안에서 치고받고 싸울 때가 아닙니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일도 하고, 힘을 내야 합니다. ‘동북아’라는 단어 대신 ‘한·중·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동북아’라는 표현이 굳어지는 순간 한국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마니까요.”
이어령 이사장은
스물세 살 때인 1956년 김동리 등 당대 문단의 대가들을 공개 비판한 칼럼 ‘우상의 파괴’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1962년 경향신문에 연재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의 본질 등에 대한 통찰력을 선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했다.
이어령 이사장은 60년 가까이 국문학자·문화학자·기호학자·소설가로서 끊임없이 글을 썼다. 1982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서는 일본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줬다. 2006년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digilog)’의 시대를 선언했다. 최근에도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 등을 출간하는 등 끝없는 지적 탐색과 식을 줄 모르는 집필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1933년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 및 대학원 졸업 △단국대 국문학 박사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화여대 문리대학 교수 △‘문학사상’ 창간 주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연출 △초대 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석좌교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현)
정리=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