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민선택 조롱하는 '깜깜이 선거'
“선거구 획정이 돼야 법적 절차에 들어가는데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듭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100일 남겨둔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예년 기준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법적 하자와 함께 종잡을 수 없는 선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선거 준비의 분수령이 되는 날은 이달 14일(선거 90일 전)이다. 공무원, 공공기관장 등이 총선 출마를 위해서는 이날까지 사퇴서를 던져야 한다. 또 정치 신인 대비 현역 의원의 장점으로 꼽는 각종 ‘의정보고활동’도 이날까지만 할 수 있다. 현역, 공무원 할 것 없이 ‘직(職)’을 걸고 출사표를 던져야 하는 날이 닥쳤는데 선거구조차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이미 공정 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한 정치 신인들의 표정은 더 어둡다. 예년이면 출마자 윤곽이 대충 드러났지만,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면서 눈치작전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통합이나 분구 대상 지역구에 출마할 공직 후보자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곁눈질을 할 수밖에 없다.

선관위가 혼란을 막기 위해 이번주까지 예비 후보들의 사전 선거를 허용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비 등록한 800여명은 새해 날이 밝자 마자 명함 한 장 돌리지 못했을 것이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기존 총선 선거구가 위헌이 되면서 대한민국 246개 선거구는 법적 효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불리해진 예비 후보들은 국회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일부 예비 후보들은 ‘선거구 획정 청구소송’ 소장에서 “정치권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헌법도 무시하면서 태업한 결과”라고 맹비난했다.

‘뒷짐’만 질 수 없는 선관위는 선거사무일정에 맞춰 일단 세부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선거구 간 2 대 1 인구편차에 따라 법적 선거구를 몇 개로 할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선거관련업무는 헛돌 수밖에 없다. 300명 국민대표를 뽑는 4·13 총선의 시계가 ‘시침(선거구 획정)’은 멈춰서 있는데 ‘분침(선거사무)’만 돌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100일 앞둔 총선은 최악의 ‘깜깜이 선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