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수저론'이 횡행하는 이유
지난해에는 이른바 ‘수저론’으로 묘사된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갈등 문제가 커다란 쟁점이었다. 이제 이 갈등이 오는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을 계기로 포퓰리즘과 결합되면 시장경제에 대한 위협으로 나타나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한국 경제의 마지막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

제법 산다는 나라의 경제체제는 시장경제다. 그런데 시장경제에서도 여느 체제에서처럼 사람들 간의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감정을 통제하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두 가지 사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시장이 형성되고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행위 준칙과 그런 시장에서 나온 결과에 대한 이해다.

우선 시장경제가 형성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 간에 일정한 행위 준칙들이 지켜져야 한다. 남의 신체에 위해(危害)를 가하지 않고 폭력이나 사기·협잡 등으로 남의 재산을 훔치지 않으며 자발적인 계약을 준수하는 것 등이다. 이런 준칙들은 명시적인 말이나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많지만, 장구한 시간에 걸쳐 형성돼 인류의 삶을 개선한 관습, 도덕, 전통 등에 녹아 있다.

준칙에 대해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점은 이런 것들은 어느 누가 고안하거나 설계한 것이 아니라, 소규모 사회에서 대규모 사회로 이행하고 사람들 간의 협동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꾸준히 발전돼 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준칙을 어기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당연히 교정돼야 한다. 모든 사람의 삶을 개선하는 시장의 형성과 작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법치(法治)란 바로 이런 준칙에 바탕을 둔 법을 준수토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준칙들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도외시한 채,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이성으로 특수한 목적을 위해 고안하고 설계한 입법(立法)은 많은 경우 갈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변천해 온 일부 준칙들은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한 것들도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입법으로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법의 근간이 되는 관습, 도덕, 전통 등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발의되는 작금의 국회 입법은 이런 성찰과 숙고를 거쳤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입법이 체계와 일관성이 없는 누더기가 되고 정작 삶을 더 어렵게 하는 이유다.

다음으로 준칙이 지켜진 시장에서 나온 결과는 정의나 불의 또는 공정이나 불공정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인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었던 준칙들을 준수하고 나온 결과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책임을 돌리고 불평할 수 있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도 불평등은 있다. 그러나 계획경제와 같은 다른 경제체제에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더 협소하거나 아예 닫혀 있으므로 불평등이 더 심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한다면 모두가 가난해지는 수밖에 없다.

물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시장경제의 결과이므로 그대로 방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장경제 옹호론자는 없다. 노동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복지정책으로 그들의 삶을 뒷받침해야 하며, 시장경제를 통해서만이 그런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게 잘사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인류의 소망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원천적 제약에 직면한 존재이며, 그런 제약을 지속적이며 효과적으로 완화해 모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불평등을 줄여 온 것이 시장경제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다면 요즈음 한국 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갈등을 한결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016년은 그런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