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복에 무슨 디자인이 있어요"
1993년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처음 섰을 때부터 세계 패션계에 ‘모던 한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특히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바람의 옷’은 모던 한복의 결정판이었다. ‘바람의 옷’은 저고리 없이 치마만 있지만, 누가 봐도 한복임을 알아볼 수 있다. 필자는 이를 통해 디자인 철학을 나타냈다. “한복이 내 디자인의 원천이며, 전통과 현대의 의상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한동안 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한복 디자인의 기능이나 방법이 아닌 창의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 많은 예술 작품을 사랑하고, 더 많은 문화를 체험하라고 권했다. 이 세상에 얼마나 아름다운 빛과 색이 많은지 말했다. 그 무수히 많은 색이 옷이 되면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그 색이 옷을 입는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돼야 하는지 등을 전했다. 40년 동안 한복을 디자인하며 느낀 게 바로 그 점이었기 때문이다.

한복은 단순히 특정한 옷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5000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한복은 시대적 요구에 기꺼이 응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해 왔다. 한복이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 한복에서 배울 점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몸에 익히고, 그 속에서 이 시대에 맞는 옷을 제작하는 게 한복 디자인이다.

필자는 후배나 학생을 만나면 “한복을 알면 세상의 디자인 중에 못할 것이 없다”고 늘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한복장이의 과장”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복의 형태와 색깔, 소재와 장식엔 한국인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구현한 전통문화의 모든 게 담겨 있다.

파리에서 만났던 여러 외신기자는 지금도 한국에 오면 필자의 매장으로 달려온다. ‘이영희’란 디자이너를 아끼는 것일 수도 있고, 필자가 한복 디자인으로 보여주고자 한 전통미를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한복 디자이너로 살아온 지 어느새 40년 세월이 흘렀고, 이젠 개인으로서의 삶과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분리한다는 게 무의미해졌으니까.

“한복에 무슨 디자인이 있느냐”는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아무 대답 없이 웃을 것이다. 애써 답하지 않아도, 이미 그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아름다움의 힘이 오래도록 남아 한국을 빛내리라 믿는다.

이영희 < 메종 드 이영희 대표 leeyounghee@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