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등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A씨는 최근 한국에 들어왔다가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외국에서 번 돈을 해외 계좌에 숨기는 방법으로 탈세했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득세법에 따라 A씨가 한국 거주자로 여겨진 게 결정적이었다. 이 법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한국에서 머문 날이 183일이 넘는 등 일정한 기준에 맞는 사람은 한국에 납세의무를 진다. A씨는 대형 B로펌의 도움을 받아 수십억원대 세금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B로펌 변호사는 “‘미신고 역외소득 및 재산에 대한 자진신고제도’의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과세당국이 세금 미납자를 찾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며 “납세자들의 관련 문의가 최근 들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신고 역외소득 및 재산에 대한 자진신고제도의 종료가 3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처 방법을 묻는 해외 자산가의 문의가 대형 로펌에 빗발치고 있다. 이 제도는 ‘다자간 조세정보 자동교환 협정(MCAA)’과 ‘한국과 미국 간의 국제 납세의무 준수 촉진을 위한 협정(FATCA)’ 시행에 앞서 정부가 대상자에게 자기 시정의 기회를 주기 위해 지난해 9월 발표했다. 3월31일이 자진신고 만료 시점이다. 자진신고자에게 미납 세금에 대한 가산세와 과태료, 국세기본법에 따른 명단 공개를 면제해주고 조세 포탈 등에 대한 형사책임을 가볍게 해주는 게 골자다. 자진신고하지 않고 과세·수사당국에 적발될 경우 심하면 계좌 잔액의 대부분을 토해낼 수 있고 국외재산도피죄가 적용되면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살 수도 있다.

주요 대형 로펌은 ‘해외 재산을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게 좋은지’에 대한 문의를 한 달에 수십 건 이상 받고 있다. 로펌들은 이미 지난해 11~12월께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자문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김태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최근 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며 자진신고 종료 시점이 가까워오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자진신고 안 했다가 적발되면 심할 경우 세액의 40%를 가산세로, 미신고 계좌 잔액의 20%를 과태료로 내야 하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철형 태평양 변호사는 “미국에 영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문의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해외에서 번 돈을 해외 계좌에 넣고 한국 과세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역외재산 규모는 880조원 정도로 세계 3위다.

로펌들은 보고 대상자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자진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게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김현진 세종 변호사는 “신고하지 않아도 MCAA와 FATCA가 시행되면 몇 년 내 한국 과세당국에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며 “형사상 공소시효가 남아 있고 제척기간(조세법상 과세당국이 부과 처분을 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나지 않았으면 자진신고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실제 자진신고와 납세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는 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김현진 변호사는 “MCAA는 국회 비준이 필요 없다. FATCA는 국회에 비준동의안이 제출돼 있지만 이견이 거의 없어 곧 통과될 것으로 본다”며 “자진신고를 피하기 위해 극단적인 경우 이민까지 고려하는 사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범준 율촌 변호사는 “상담만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까지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자진신고할지를 결정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 MCAA

다자간 조세정보 자동교환 협정. 협약에 가입한 국가(5일 현재 78개국)의 금융회사는 다른 협약 국가 납세자의 계좌 정보를 그 나라 과세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한국은 2014년 10월 가입했으며 국내 시행 예정 시기는 내년 9월이다. 미국과는 같은 내용으로 별도의 협정인 ‘한국과 미국 간의 국제 납세의무 준수 촉진을 위한 협정(FATCA)’을 지난해 5월 맺었으며 9월 시행에 들어간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