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엊그제 시무식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심 판단을 바꾸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법적 분쟁은 1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래야 재판의 권위와 신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지 않게 1심 판결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물론 옳은 말이다. 1심 판결에 불복해 2심은 물론 대법원까지 가서 끝장을 보는 사례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법원행정처의 2015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1심 합의사건의 판결에 불복해 2심인 고등법원에 항소한 비율이 42.1%, 고등법원의 판결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한 비율은 44.7%나 된다. 특히 대법원까지 간 상고심 건수는 2010년 4029건, 2012년 4432건, 2014년 5643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대법원이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는 지경이다.

다 이유가 있다. 고법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한 건수는 2014년 5087건, 30.8%나 된다. 10건 중 3건 이상의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취소한 파기율 역시 11.0%다.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 판단을 받으려는 게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맡아야 판사가 소장이라도 읽어본다는 말이 나오는 정도다. 전관예우의 도장값이 3000만원이나 된다는 것은 풍문인가? 특히 재산 송사는 2심, 3심으로 보내는 게 관행이라는 말이 들린다. 하급심은 대법원 판결이 수립된 사안에서조차 제멋대로다.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승소 패소가 갈린다. 대법원조차 정치자금법 위반 같은 단순한 사안 판결에 5년이나 걸린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른다. 지난해 OECD 조사 결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41개국 가운데 밑에서 네 번째였다. 사법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100점 만점에 60점이었다. 전관예우, ‘막말 판사’와 향판, 정치적 편향성 같은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나아지는 것은 없다. 대법원조차 불신받고 법치가 흔들리는 것은 사법부의 책임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법조가 총동원돼 로스쿨 무력화에라도 나선 형국이다. 특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인지. 사법부 개혁은 언제쯤 기대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