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기업 '협력 훈풍' 분다…에너지 분야서 추가성과 기대
한·일 양국 간 정치·외교 관계가 경색돼있던 기간에도 양국 기업들은 물밑에서 조용하게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반도체 분야 경쟁 기업인 SK하이닉스와 도시바 간 차세대 공정 공동개발 합의, 한국의 석유화학 에너지 기업과 일본 상사기업의 해외시장 공동 진출 등이 대표적 사례다.

양국 산업계는 위안부 협상 타결 이후 한·일 양국에 본격적인 훈풍이 불면, 한·일 기업 간 협력이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업계나 다양한 수입처 발굴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에너지분야에서 협력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SK하이닉스와 도시바는 지금보다 더 미세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NIL) 공정을 공동 개발하기로 2014년 합의했다. 도시바가 SK하이닉스에 대해 1조원대의 특허소송을 제기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차세대 먹거리를 찾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작년 4월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도시바 공장에 담당 엔지니어들을 파견해 NIL 공동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두 회사는 차세대 기술 개발과 낸드플래시 시장의 최고 기업이 돼야 한다는 공동 목표가 있다”며 “앞으로도 협력관계는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SK종합화학은 일본 JX에너지와 50%씩 총 9363억원을 투자해 울산에 지은 파라자일렌(PX) 생산공산을 작년 10월 준공했다. 이 공장에선 앞으로 PX 연간 100만t, 벤젠 60만t 등 아로마틱 계열 화학제품 160만t을 생산하게 된다.

에너지 분야도 한·일 기업 간 협력이 활발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한국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국가들”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치면 LNG 등 에너지 조달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일본 미쓰비시상사와 함께 ‘동기 세노로 LNG(DSLNG) 프로젝트’를 최근 마무리했다. 두 회사는 인도네시아 북부 술라웨시섬 동부 해안에 LNG 플랜트를 건설해 지난해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가스공사는 사업 추진을 위한 파트너를 물색하던 중 미쓰비시상사의 제안을 받고 2011년 이 사업에 2억1000만달러(지분율 14.97%)를 투자하기로 했다.

GS건설도 2013년 터키 스타사가 발주한 사업비 34억5600만달러 규모의 미즈밀 정유공장 건설사업을 일본 이토추상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따냈다. 한국전력은 미쓰비시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요르단 국영전력회사인 넵코의 알마나커 디젤발전소 사업을 2012년 수주했다. 지난해 가동에 들어간 이 발전소는 공사비 5억5000만달러 규모다.

이종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은 “자원개발 등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은 설계·조달·시공(EPC)에 강하고 일본은 기술력·자본력·정보력에서 한국을 앞선다”며 “위안부 합의 후 에너지분야에서 가장 빨리 가시적인 협력 성과가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일 경제인들은 양국 간 정치현안이 빨리 풀리길 바라고 있다”며 “이번 위안부 합의로 양국 기업들의 협력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