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온 정치인들이 4·13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를 위해 줄줄이 사퇴하고 있다. ‘관피아(관료+마피아)’ 방지법으로 공공기관의 비어 있는 자리를 꿰찬 ‘정피아(정치인+마피아)’들이 해당 공기업의 경영상황은 뒤로한 채 다시 선거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非)전문가 낙하산으로 내려왔다가 선거 때마다 떠나는 ‘철새 정피아’들 때문에 해당 공공기관들만 망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선 뛰는 '철새 정피아'에 망가지는 공기업
◆“뱃지가 더 좋아”…줄줄이 사퇴

박완수 전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지난달 19일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자진 사퇴했다. 2004년부터 10년간 경남 창원시장을 지낸 그는 4월 총선에서 창원 의창구 출마를 고려 중이다. 한국지역난방공사도 사장 자리가 비어 있다. 국회의원 출신 김성회 전 사장이 지난달 30일 총선 출마를 위해 자진 사퇴해서다. 김 전 사장은 18대 총선 때 경기 화성을 지역구에서 당선됐지만, 19대 총선에선 낙선하고 2013년 치러진 10·30 재·보궐선거 땐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에게 양보했다. 그 대가로 새누리당에서 지역난방공사 사장 자리를 챙겨줬다는 얘기가 많았다. 김 전 사장은 6일 통화에서 “본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이번에 분구가 유력시되는 경기 화성 출마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차장 출신으로 지난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김석기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도 경북 경주에서 재출마하기 위해 임기를 10개월 남겨 놓은 시점에 그만뒀다. 현 정부 청와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도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달 사표를 냈다.

◆경영 공백 우려 없다더니

공공기관장들이 선거판으로 떠나면서 경영 공백에 따른 여파는 공공기관들이 모두 떠안게 됐다. 최근 사상 초유의 수하물 실종 사태를 일으킨 인천공항공사가 대표적이다. 인천공항은 2000년대 초 개항 이후 10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으로 평가받을 만큼 경쟁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공항 이용객이 이미 수용능력을 넘어서 시설 확장을 위한 2단계 투자가 필요했지만 적기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번처럼 수하물 대란이 벌어졌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들어 두 차례 연속으로 이뤄진 낙하산 인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비판이 공항공사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국토교통부 차관 출신으로 현 정부 들어 첫 사장이 된 정창수 전 사장이 취임 8개월 만인 2014년 3월 강원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돌연 사퇴하면서 7개월간 경영 공백이 빚어졌다. 이어 정치인 출신 낙하산으로 내려온 박완수 전 사장마저 이번에 중도 사퇴하면서 사내에선 “우리 회사 사장 자리는 뱃지를 달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곳이냐”는 자조까지 나온다.

◆후임에 낙선·낙천자 갈 듯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출마로 비어 있는 자리’는 다시 ‘낙선·낙천자를 위한 자리’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게 공공기관들의 분위기다.

한국시설안전공단, 한국중부발전,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남부발전, 한국석유공사, 한국동서발전 등은 이미 기관장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아 길게는 반년 이상 경영 공백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남부발전, 동서발전, 중부발전 등 한전 발전자회사들이 총선 시즌에 임박한 지난달부터 사장 선임절차에 들어간 것을 두고 일각에선 새누리당에서 낙천한 정치인을 챙겨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기관장뿐 아니라 비어 있는 공기업 감사 자리도 당직자 출신이나 낙천·낙선자들이 차지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