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아이] 화성판 삼시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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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이 보여준 융복합의 힘
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김봉구 기자 ] 화성에 한 남자가 홀로 남는다. 사고로 낙오된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다. 생존과 지구 귀환을 작심한 그가 당장 맞닥뜨린 과제는 먹을거리다. 다음 탐사선이 화성에 오는 건 5년 뒤, 가진 식량은 대원 6명의 한 달치. 보통사람이라면 절망할 타이밍에 그는 씩 웃어 보인다. 그리고 자랑스레 고백한다. “난 식물학자거든요.”
솔직하게 털어놓겠다. 개봉한 지 석 달이 지난 이 영화 ‘마션(The Martian)’을 최근에야 봤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새해 들어 마션 특집을 예고한 영향도 있다.
마션은 얘깃거리가 많은 영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마션 띄우기에 나섰을 만큼 실제 우주탐사와 흡사하게 그려냈다는 평이다. 어떤 이는 우주농업의 가능성을, 또 어떤 이는 인간의 생존의지를 읽었다. ‘화성판 삼시세끼’, ‘로빈슨 크루소 화성버전’ 같은 한 줄 평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주관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기자의 감상 포인트는 ‘융복합의 힘’이다. 기계공학자인 동시에 식물학자인 이 남자가 아니라면 과연 누가 화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힘을 낸 와트니가 기지 안에 비닐하우스 같은 공간을 만들어 텃밭을 일군다. 살풍경한 우주 공간에 어느 순간 감자가 새싹을 틔운다. 캄캄한 우주 공간과 화성의 황량한 풍광이 이어지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영롱하게 빛나던 초록색이었다. 융복합이란 명제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지는 꽤 됐다. 용어는 조금씩 바뀌었다. 앞서 학제간·탈경계 같은 레토릭이 동원되거나 통섭(統攝) 등 유사 개념이 제시됐다. 요즘 들어선 창조경제와 맞물려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부쩍 많이 쓰이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 손에 확 잡히는 게 없어서다. 그런 점에서 마션은 융복합이 필요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미덕이 있다. IT와 BT(바이오기술)의 접목이 화성까지 갈 수 있도록 하고,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했음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다.
사실 융복합이 제대로 구현되기엔 현실 곳곳에 걸림돌이 있다. 칸막이 문제와 과학성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 예다. 영화의 막간에도 드러난다. 평소 아옹다옹하던 동료는 와트니와 교신이 되자 농을 건다. 식물학은 ‘진짜 과학(real science)’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이다.
와트니는 쓴웃음을 짓고 말 뿐이었지만 이 같은 인식은 실제로도 꽤 퍼져있는 것 같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저서 ‘제로 투 원’에서 생명공학 스타트업을 불명확하고 임의적인 접근법의 고연봉 실험실 농땡이로, 반면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은 이해도 높은 환경에 명확한 접근법을 가진 사업가적 마인드의 열성적 해커로 표현했다.
실은 남 말 할 처지가 못 된다. 컴맹에 기계치인 스스로도 ‘문과 출신’이란 핑계를 대고 있으니까. 생각하면 문·이과로 갈라 내가 속하지 않은 쪽은 아예 버려두는 게 정상은 아닌 듯싶다. 융복합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부자연스러운 경계를 허물고 넘어서는 데서 시작하는 것일 터이다.
화성 얘기로 돌아가자. SF(공상과학) 소설의 고전인 ‘우주전쟁’(H.G.웰스 저)은 화성인의 지구 침공을 줄거리로 한다. 다리 셋 달린 화성인의 강철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 공격에 군대는 줄줄이 격퇴 당하고 속수무책인 지구인들은 절망한다.
당할 자 없던 화성인을 물리친 건 다름 아닌 박테리아다. 면역 체계가 없는 화성인이 감기 정도의 단순한 바이러스 미생물체에 감염돼 죽는다는 결말이다. 19세기 말 작품에서 이미 융복합 접근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마션의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역시 친숙한 멜로디의 올드팝 ‘아이 윌 서바이브’다. 우리의 미래에 융복합이 진정 필요한 이유는 ‘생존’ 아닐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 김봉구 기자 ] 화성에 한 남자가 홀로 남는다. 사고로 낙오된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다. 생존과 지구 귀환을 작심한 그가 당장 맞닥뜨린 과제는 먹을거리다. 다음 탐사선이 화성에 오는 건 5년 뒤, 가진 식량은 대원 6명의 한 달치. 보통사람이라면 절망할 타이밍에 그는 씩 웃어 보인다. 그리고 자랑스레 고백한다. “난 식물학자거든요.”
솔직하게 털어놓겠다. 개봉한 지 석 달이 지난 이 영화 ‘마션(The Martian)’을 최근에야 봤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새해 들어 마션 특집을 예고한 영향도 있다.
마션은 얘깃거리가 많은 영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마션 띄우기에 나섰을 만큼 실제 우주탐사와 흡사하게 그려냈다는 평이다. 어떤 이는 우주농업의 가능성을, 또 어떤 이는 인간의 생존의지를 읽었다. ‘화성판 삼시세끼’, ‘로빈슨 크루소 화성버전’ 같은 한 줄 평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주관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기자의 감상 포인트는 ‘융복합의 힘’이다. 기계공학자인 동시에 식물학자인 이 남자가 아니라면 과연 누가 화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힘을 낸 와트니가 기지 안에 비닐하우스 같은 공간을 만들어 텃밭을 일군다. 살풍경한 우주 공간에 어느 순간 감자가 새싹을 틔운다. 캄캄한 우주 공간과 화성의 황량한 풍광이 이어지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영롱하게 빛나던 초록색이었다. 융복합이란 명제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지는 꽤 됐다. 용어는 조금씩 바뀌었다. 앞서 학제간·탈경계 같은 레토릭이 동원되거나 통섭(統攝) 등 유사 개념이 제시됐다. 요즘 들어선 창조경제와 맞물려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부쩍 많이 쓰이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 손에 확 잡히는 게 없어서다. 그런 점에서 마션은 융복합이 필요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미덕이 있다. IT와 BT(바이오기술)의 접목이 화성까지 갈 수 있도록 하고,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했음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다.
사실 융복합이 제대로 구현되기엔 현실 곳곳에 걸림돌이 있다. 칸막이 문제와 과학성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 예다. 영화의 막간에도 드러난다. 평소 아옹다옹하던 동료는 와트니와 교신이 되자 농을 건다. 식물학은 ‘진짜 과학(real science)’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이다.
와트니는 쓴웃음을 짓고 말 뿐이었지만 이 같은 인식은 실제로도 꽤 퍼져있는 것 같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저서 ‘제로 투 원’에서 생명공학 스타트업을 불명확하고 임의적인 접근법의 고연봉 실험실 농땡이로, 반면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은 이해도 높은 환경에 명확한 접근법을 가진 사업가적 마인드의 열성적 해커로 표현했다.
실은 남 말 할 처지가 못 된다. 컴맹에 기계치인 스스로도 ‘문과 출신’이란 핑계를 대고 있으니까. 생각하면 문·이과로 갈라 내가 속하지 않은 쪽은 아예 버려두는 게 정상은 아닌 듯싶다. 융복합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부자연스러운 경계를 허물고 넘어서는 데서 시작하는 것일 터이다.
화성 얘기로 돌아가자. SF(공상과학) 소설의 고전인 ‘우주전쟁’(H.G.웰스 저)은 화성인의 지구 침공을 줄거리로 한다. 다리 셋 달린 화성인의 강철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 공격에 군대는 줄줄이 격퇴 당하고 속수무책인 지구인들은 절망한다.
당할 자 없던 화성인을 물리친 건 다름 아닌 박테리아다. 면역 체계가 없는 화성인이 감기 정도의 단순한 바이러스 미생물체에 감염돼 죽는다는 결말이다. 19세기 말 작품에서 이미 융복합 접근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마션의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역시 친숙한 멜로디의 올드팝 ‘아이 윌 서바이브’다. 우리의 미래에 융복합이 진정 필요한 이유는 ‘생존’ 아닐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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