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위안화 가치 급락으로 촉발된 전 세계 금융시장 요동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중국이 ‘매우 위험한 길’에 들어서면서 위안화 평가절하 정책에 내재된 거대한 리스크가 현실화됐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경기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꺼내든 위안화 평가절하 카드가 자본 유출 우려를 키워 결국 글로벌 증시의 대혼돈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쪽 시장경제' 중국] 중국 '위안화 절하 도박'…시장 역습에 '통제 불능' 위기
◆SDR 편입 후 달라진 중국

2014년 11월 중국 인민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했을 때 일부 중국 경제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금리 인하 여지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자본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인민은행은 그러나 경기부양이 우선이라고 판단,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하지만 실물경기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인민은행은 위안화 환율 쪽으로 눈을 돌렸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인민은행이 ‘위안화 평가절하’를 통화정책의 큰 방향으로 잡은 시점을 작년 8월11일로 보고 있다. 인민은행은 그날 기습적으로 미국 달러화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사상 최대 폭인 1.86% 올려(위안화 평가절하) 고시했다. 이후 작년 11월30일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구성통화로 결정되기 전까지는 외환시장에서 계속 미국 달러화를 매도해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았다. IMF가 SDR 구성통화의 필요 요건 중 하나로 ‘통화가치의 안정성’을 꼽고 있어, 위안화 가치를 어느 정도 지탱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안화의 SDR 편입이 결정된 뒤 상황은 다시 달라졌다. WSJ는 복수의 인민은행 내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인민은행엔 ‘한 건 했다’는 자축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위안화 평가절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암초 만난 위안화 절하 도박

작년 하반기부터 서구 경제학자 사이에선 중국 경제가 ‘트릴레마’에 빠져 있다는 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트릴레마는 3중고라는 뜻이다. 경제학에서는 한 국가가 △독립적인 통화정책 △환율안정 △자유로운 자본흐름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쓴다. 수출과 경기부양을 위해선 자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야 하지만 그럴 경우 자본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

인민은행은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 평가절하라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다. 점진적이고 통제된 위안화 가치 하락은 급격한 자본 유출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란 게 인민은행의 판단이었다. 작년 12월만 해도 인민은행의 위안화 절하 도박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한 달간 미국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는 1.4% 하락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나흘 동안 위안화 가치는 1.69% 급락했다. 외환시장 딜러들 사이에선 “위안화 환율이 인민은행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는 얘기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인민은행이 두 가지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는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군집 행동’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동안 외환시장에선 위안화 가치는 항상 오른다는 기대 심리가 형성돼 있었지만, 위안화 가치가 하락세로 일단 방향을 틀자 추가 하락에 베팅하는 반대 기대심리가 급속하게 형성됐다고 진단했다.

두 번째는 위안화 절하 조치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위안화 가치 급락은 ‘중국의 실물 경기가 예상보다 더 안 좋다’는 뜻으로 해석됐고, 상하이 증시와 글로벌 증시의 연쇄 폭락으로 이어졌다.

인민은행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7일 홍콩 역외시장에서 달러 매도 개입을 통해 위안화 가치 하락을 진정시켰고, 8일에는 달러화 대비 기준환율을 9일 만에 전날 대비 0.015% 낮춰 고시했다. WSJ는 “중국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투매로 인민은행의 위안화 평가절하 도박의 위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