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사진)이 “상품과 채널(고객과의 접점) 혁신을 통해 ‘넘버원’ 생명보험사가 되겠다”는 2020년 비전을 발표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이던 그가 부친 신용호 창업주의 부름을 받아 1996년 교보생명에 입사한 이후 2001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제시하는 발전 비전이다. 그는 “상품·채널의 혁신은 경쟁사와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과거와의 싸움”이라며 “넘버원이란 과거의 우리보다 더 많이 개선해 가장 혁신을 잘하는 회사가 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과거를 뛰어넘자"…50분간 혁신 외친 신창재
신 회장은 지난 8일 충남 천안의 교보생명연수원(계성원)에서 열린 비전2020 출발대회에서 임직원 1000여명을 대상으로 50여분에 걸쳐 비전의 의미를 설명했다. “강연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다양한 영상 자료를 담은 파워포인트도 곁들였다.

신 회장은 ‘2016년은 보험산업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변화가 시작되는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상품 개발과 가격에 대한 규제가 거의 다 풀리는 만큼 이제는 할 말이 없게 됐다”며 “상품과 채널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빠르게 혁신하느냐에 보험사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또 “상품을 혁신하자고 하면 ‘상품지원실만 잘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은 전 임직원이 평소에 의문을 갖고 아이디어를 내면 여러 팀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내는 최종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강연 마지막 대목에선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중용의 한 구절을 소개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비전을 중시하는 오너 경영인이다. 교보생명에서 비전은 회장보다 높은 ‘빅 보스(big boss)’로 통한다. 회장의 말보다 비전이 위에 있고, 회장도 비전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라고 교보 측은 설명했다.

신 회장의 비전 경영은 2001년 시작됐다. 당시 교보생명은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자산 손실만 2조4000억원에 달하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때 신 회장은 외형 경쟁을 중단하고 ‘핵심 고객이 선호하는 회사’라는 10년 뒤를 염두에 둔 비전을 내놨다.

2011년엔 ‘고객보장을 최고로 잘하는 회사’라는 새 비전을 내세웠다. 보험 가입, 유지, 지급 등 전 과정의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 고객에게 ‘평생든든서비스’를 추진한 것도 신 회장의 의지였다. 지난 5년간 교보생명 설계사들은 해마다 150만명의 고객을 찾아가 모르고 있던 보험금 330억원을 찾아주기도 했다.

이런 노력은 경영 성과로 이어졌다. 고객 만족도를 가늠하는 2년 이상 계약유지율이 70%까지 상승했다. 5년 전보다 10%포인트 오른 것이다. 지난해 12월엔 국내 보험업계 처음으로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서 신용등급 ‘A1’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세계적인 금융사인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등과 같은 등급이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