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수는 부사수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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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 < JB금융그룹 회장 chairman@jbfg.comr >
![[한경에세이] 사수는 부사수의 미래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601/AA.11108610.1.jpg)
내게도 사수가 있었다.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이다. 제일 존경하는 경영인이자 멘토다. 황 전 회장은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부사수였다. 난 1980년대 동부그룹 미국 현지법인에 근무할 때 황 전 회장을 사장으로 모셨다. 그는 아랫사람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바쁜 일과 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고 사색했다.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난 황 전 회장과 함께 미국에서 몬산토가 한국에 투자하도록 하는 등 많은 일을 벌였다. 만날 회의와 토론의 연속이었지만, 내 사수는 따로 뭘 하라 마라 말하는 게 없었다. “이때쯤이면 지시할 일이 있겠지”란 생각에 사장실 문을 열면 사수는 독서 삼매경이었다.
황 전 회장의 의전은 소탈한 성격만큼이나 간소했다. 다만 “현실을 꼼꼼히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시간을 생각하는 데 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큰 그림만 그리고, 나머지 구체적인 스케치와 채색은 부사수에게 맡기는 그의 통 큰 리더십은 지금의 내 경영 스타일에도 영향을 줬다. 업무의 적합한 사람을 신중히 골라 쓰되 일단 선택하면 전폭적으로 믿고 밀어준다. 아마도 황 전 회장도 자신의 사수인 박 명예회장에게 배운 것 같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리더는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방아쇠를 당겨, 탄알이 과녁에서 벗어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줄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수십, 수백 번 거치면서 부사수는 또 다른 어엿한 사수로 성장한다.
난 요즘도 옛 사수를 만나 사회 전반은 물론 회사 경영에 대한 고견을 듣는다. 간혹 내가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아흔을 앞둔 백발의 사수는 “제대로 된 경영자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안다”고 따끔히 일갈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우리 사회에 이런 큰 어른들이 사라지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두렵기만 하다. 사수, 부디 건강히 오래오래 사십시오.
김한 < JB금융그룹 회장 chairman@jbfg.com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