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중국, 신뢰 잃고 대국 건설 가능하겠나
중국의 2015년은 화려했다. 위안화는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바스켓에 포함돼 국제통화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자체 개발한 대형 여객기는 기술 강국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고, 의생리학 분야에서 역사상 첫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베이징은 2008년 하계올림픽에 이어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내 국제도시로 한 발 더 도약하게 됐다. 항일전쟁 승리 70년을 기념한 성대한 열병식은 ‘군사굴기(軍事起)’를 선언하는 계기였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미국의 아성을 넘어 중국의 ‘대국굴기(大國起)’를 실천으로 옮기는 무대가 됐다. 거칠 것이 없는 행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2016년 신년사에는 그런 자신감이 아낌없이 녹아 있다. 샤오캉(小康)사회(인민 모두가 중산층 이상인 잘사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막바지 단계이자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건설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새해 첫 출발은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무엇보다 경제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중국발(發) 스모그’는 글로벌 경제를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금융시장 불안은 중국의 실물경제에도 직격탄이 되면서 경착륙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다른 문제는 외교에서 터졌다. 귀띔조차 없던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이다. 후견인의 체면이 구겨진 건 둘째다. 중국에 과연 세계 평화의 한 축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심각한 것은 모든 문제가 신뢰의 상실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시장의 ‘차이나 리스크’는 중국 정부 정책의 불투명성 탓이다. 중국이 환율 결정방식을 달러페그제에서 통화바스켓 제도로 변경했다지만 시장은 위안화 환율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전혀 모른다. 안정돼 있던 위안화 가치는 SDR에 포함되기 무섭게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투기 수요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주범은 정부 정책의 불투명성이다. 의도적인 평가절하에 글로벌 준비통화의 환율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시장이 어떻게 이해하겠나. 신뢰 상실은 위기를 낳는다.

주식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새해 도입한 서킷브레이커 제도는 증시 폭락의 기폭제가 되면서 며칠 만에 잠정 폐지됐다. 대주주 지분매각 금지 조치도 예고 없이 연장됐다. 중국 정책당국과 책임자에 대한 불신은 경제 상황과 개혁 의지에 대한 의문, 신용 위기에 대한 우려가 맞물리면서 더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라면 중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오는 16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AIIB 창립총회에 참석해 연설한다. 그러나 그들의 얘기에 누가 귀 기울이겠는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당혹스러울 정도다. 한·미·일 6자 회담 수석대표들이 13일 서울에서 만나 대응책을 논의했지만 중국은 불참했다. 3국 간 협의 결과를 놓고 한·중 수석대표가 베이징에서 머리를 맞댄다지만 의미가 같을 수 없다.

한국의 요청에도 양국 정상 간 통화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양국 국방장관 간 통화도 마찬가지다. 외교장관 간 통화는 이뤄졌다지만 중국 외교장관은 중국 정부의 기존 원칙만 되뇌었을 뿐이다.

중국은 과거 세 차례 북한 핵실험 때도 UN 제재에는 동참하면서도 실질적인 제재는 거부해 왔다. 그나마 시 주석이 최근 한국은 물론 미국이나 일본과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한반도의 긴장 고조와 북한의 UN 결의 위배 행위를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중국이 다짐과 달리 북한의 4차 핵실험에도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어떻게 될까. 더욱이 주변국 반대에도 전승절에 망루 위에 섰던 한국이다.

중국 정부에 시장은 투명성을, 주변국은 북핵에 대한 강력한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몽(中國夢)’의 실현을 외치는 시 주석이다.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중국몽의 실현이 가능할지. 신뢰의 의미부터 깨닫기 바란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