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연습실. 소녀가 묘기를 하듯 정글짐을 타고 올라간다. 소년은 칼을 들고 나무를 찌르는 몸짓을 선보인다. 숲 속에서 사람들을 ‘돼지 잡듯’ 죽인 살인마를 만날 것에 대비한 예행연습은 어느새 군무로 변한다. 이를 지켜보던 소녀가 정글짐 위에서 소리친다.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박소담 분)와 소년 오스카(오승훈 분)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난 너와 친구가 될 수 없어. 그냥 알고 있으라고.” 소녀는 이 말을 남긴 채 2m가 넘는 구조물 위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그대로 낙하한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렛미인’ 연습 공연에서 오스카(오승훈 분)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박소담 분)의 냄새를 맡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렛미인’ 연습 공연에서 오스카(오승훈 분)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박소담 분)의 냄새를 맡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뱀파이어 소녀와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스웨덴 영화 ‘렛미인’이 무대에서 다시 태어난다.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렛미인’이다. 오리지널 작품은 스코틀랜드국립극단이 제작하고, 뮤지컬 ‘원스’로 토니상과 올리비에상 최우수 연출상을 받은 존 티파니가 연출을, 세계적인 안무가 스티브 호겟이 안무를 맡았다. 해외에서 대본만을 사오는 기존의 제작 방식과 달리 티파니를 비롯한 오리지널 연출팀이 한국 배우들을 직접 진두지휘한다.

연극은 눈밭에서 펼쳐지는 북유럽 영화의 ‘창백한 서정성’을 그대로 옮겨왔다. 무대는 하얀 눈이 쌓인 스산한 숲이다. 숲은 마치 동화처럼 거실이 되기도 하고, 침실이 되기도 한다. 티파니 연출은 “가녀린 소녀의 몸으로 초인적인 힘을 뿜어내는 뱀파이어 캐릭터를 전달하기 위해 연극에서는 독특한 몸놀림이 많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뱀파이어 소재의 특성상 영화의 특수효과 같은 장치도 많이 사용한다. 티파니 연출은 “침대가 불타는 등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은 빼고, 최대한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관객들은 일라이와 오스카 때문에 극도로 공포감을 느끼면서 아슬아슬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무대 위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를 사용한다. 그는 “뱀파이어가 사람의 피를 빨아 마시는 장면을 본 관객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렛미인’은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 박소담의 연극 데뷔작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소담은 “관객들이 ‘쟤는 뭐지’ 하며 이상하게 느낄 만한 캐릭터”라며 “캐릭터를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끼지 않도록 연기와 몸짓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극은 신시컴퍼니와 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했다. 신예 이은지가 박소담과 함께 일라이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오스카 역에는 신예 안승균과 오승훈이 낙점됐다.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일라이에 대한 순애보를 보여주는 하칸 역은 중견배우 주진모가 맡았다. 3만3000~7만7000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