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룰을 지키는 사회
몇 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살 때였다. 부모님과 함께 골프장을 찾았다. 그런데 직원이 “골프 면허증이 있느냐”고 물었다. 자동차도 아니고 골프에 면허증이 필요하다니. 황당했다.

나중에 알아 보니 독일에서 골프를 즐기려면 필기에 실기시험까지 통과해야 한다. 필기는 골프 규칙에서 에티켓까지 다 마스터해야 통과할 수 있다. 실기시험은 최소 더블보기 플레이 정도 실력은 돼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머리 얹는 초보자’가 땅볼만 치다 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배려였다. 사람들이 초보자 때문에 진행을 방해받지 않고 정해진 규칙 속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안전과 직결된 자동차 운전면허증은 더했다. 20년 이상 운전해온 필자도 까다로운 필기와 실기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툴툴거리며 두 달간 드라이빙 스쿨을 다닌 뒤에야 면허증을 받았다. 이 면허증을 들고 그 유명한 아우토반(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을 달렸다. 아우토반에서도 시스템은 철저히 지켜졌다. 차들은 추월할 때만 왼쪽 차로를 이용하고 가능한 한 오른쪽 차로로 달린다. 룰을 지키는 게 익숙한 독일에선 이른바 ‘모세의 기적(구급차를 위해 차들이 길을 터주는 현상)’이 놀랍지 않다.

독일 생활 적응이 어렵다고들 하나, 시스템을 이해하고 룰을 지키면 살기 편하다. 대신 까다로운 룰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기나긴 신호 대기 행렬에서 끼어들기와 새치기가 흔하다. 누구나 그래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리라. “시스템과 룰을 지키는 것보다 빨리 가는 것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우린 ‘빨리 가는 것’이 중요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달려야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했고, 규칙을 지키지 않더라도 빨리 가면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시스템을 무시해도 가능한 과거의 고성장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빨리 가는 자전거는 손을 놔도 균형을 유지하지만, 천천히 갈수록 균형을 잡기 어렵다. 장기화하는 저성장 시대에 한국은 새롭게 균형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 결과와 과정, 단기 성과와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며 룰을 지키는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

최원식 <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 se_media@mckinse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