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토대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윤종용 부회장은 성공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답했다. “조령모개(朝令暮改)”라고. ‘아침에 세운 걸 저녁에 바꿨다’는 뜻이다. 즉 “끊임없이 변화했다”는 말이다.

요즘 같은 초(超)경쟁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는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변화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어느 보험회사 직원들이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가짜 보험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하자.

가짜 계약서를 쓰는 직원이 많아 회사가 맺는 보험계약서의 약 30%가 가짜라고 생각해 보자. CEO에겐 기가 차는 얘기다.

상황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가장 흔한 방법은 허위 계약서를 작성한 보험설계사를 엄벌하는 것이다. 감봉 정직 등 징계하거나 심지어 회사에서 내쫓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효과가 있겠지만 잃어버리는 부분도 크다. 첫째, 애써 훈련해 전문성을 갖춘 보험설계사를 잃는다. 직원들이 쫓겨 나가면서 회사 분위기도 흉흉해진다. 만일 쫓아내지 않고 징계에 처한다면 흑심을 품은 설계사들은 그때부터 계산에 들어갈 것이다. 발각될 가능성과 징계의 정도, 그리고 가짜 계약서로 자신이 얻는 이익을 양 축에 두고 저울질할 것이다. 그래서 들킬 위험성이 적다고 판단하면 계속 가짜 계약서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가치관을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직원들이 토론하고 성찰하면서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미래의 역경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란 답을 얻어냈다고 하자. 그리고 임직원 모두가 가치관에 진심으로 공감했다고 하자. 이런 공감을 가지는 순간 직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가치관 경영, 회사를 부활시키다

자신을 ‘수수료를 벌기 위해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보험증서를 팔아야 하는 영업직원’에서 ‘사람들이 미래의 역경에서 좌절하지 않게 도와주는 의미있는 일을 하는 자’로 인식하게 된다.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들은 가짜 계약서로 의미있는 일에 장난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이 보람과 의미가 있는 직업을 가짜 계약서로 부끄럽게 만들지 맙시다”라는 CEO의 외침은 그 어떤 것보다 큰 호응을 얻으며 회사에서 가짜 계약서를 추방해 버린다.

이 이야기는 2000년 자산 손실 2조4000억원, 보험 계약서의 30%가 가짜였던 난파 직전의 교보생명 경영을 맡은 신창재 회장이 실제로 했던 일이다. 그는 가치관 경영으로 회사에서 가짜 계약서를 완전히 없앴다. 이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느끼는 보람과 의미를 활용해 망하기 직전의 회사를 10여년 만에 국내 최고 보험사 중 하나로 변화시켰다.

직원들이 ‘회사의 존재 이유’라는 요인 하나만 제대로 이해해도 기업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존재의 이유만큼 꿈도 중요하다. 꿈은 인간이 가진 믿음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어떤 CEO는 꿈을 활용해 직원들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란 외침은 큰 호소력을 지닐 수 있다.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해 줘야

‘핵심 가치’란 우리에게 보람과 의미를 주는 사명을 완수하고, 또 우리가 가진 ‘가슴 뛰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사명과 꿈을 이루기 위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직원들이 합의하면 그것이 그 회사의 핵심 가치가 된다. 즉 직원들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며 일하게 되는 것이다.

물리학에 ‘벡터의 합’이란 용어가 있다. 같은 힘을 가진 말 두 마리가 반대쪽으로 움직이면 그 힘의 합은 제로(0)가 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직원이 많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면 조직 전체의 힘은 약해진다. 채찍을 휘둘러 직원들이 열심히 뛰어도 효과는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직업 특성상 CEO를 끊임없이 만난다. 많은 CEO가 여러 가지 불만을 쏟아낸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파벌이 심하다” “맨날 싸운다”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걸핏하면 떠난다” “윤리적이지 않다” “불안해서 일을 맡길 수 없다” 등 각양각색의 고충을 토로한다. 이런 현상을 고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써 본다고 한다. 쫓아낸다고 협박하기도 하고, 실제 쫓아내기도 한다. 타이르기도 하고, 강력한 성과보수도 준다. 그러다 결국 “별짓을 다 해봐도 성과가 별로 없다”고 푸념한다.

‘계산 없는 믿음’을 얻는 게 중요

한탄을 늘어놓는 CEO들에게 필자는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직원들의 믿음, 즉 회사의 존재 이유, 꿈, 그리고 핵심 가치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가치, 즉 ‘믿음’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다. 사람에게 행동을 주문하면 그들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따지고 계산한다. 그렇지만 믿음을 집어넣어주면 계산 없이 행동하게 된다.

현명한 CEO, 성공하는 CEO는 인간의 이런 점을 알고 있는 CEO다. 직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믿음을 변화시킴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공포심과 성과보수가 아니라 그들의 가치, 믿음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치관 경영이다.

변화를 꿈꾸는 CEO들이여! 정말 회사를 바꾸고 싶은가. 가장 먼저 회사의 가치관을 들여다보자. 거기서 시작해 보자.

전성철 < IGM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