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사조인 단색화는 지난해 국내외 미술 애호가들의 매집 열풍으로 가격이 껑충 뛰어 경매 낙찰총액(1880억원)의 38.7%를 차지했다. 출품작 724점 중 646점(729억원)이 팔려 낙찰률 89.2%를 기록하며 실질적으로 미술품 거래를 주도했다. 올해에는 어떤 테마가 뜰까.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새해에도 국내 미술시장이 단색화를 중심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오는 29일로 10주기를 맞는 비디오 아트 창시자 백남준, 복고문화 열풍에 따른 1980~90년대 민중미술, 저평가된 고미술품 등이 ‘틈새 테마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중국의 경기 둔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 환율 변동과 저유가 기조 등 불투명한 경제 상황에서도 미술시장에서는 백남준과 1980년대 민중미술, 고미술품 전시회가 늘고 있다”며 “단색화만큼은 아니지만 가격 상승의 모멘텀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2007년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7억원에 낙찰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라이트형제’.
2007년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7억원에 낙찰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라이트형제’.
◆줄 잇는 백남준 재조명 전시회

올해는 백남준 작품의 가치 재평가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최대 화랑 가고시안갤러리가 백남준을 전속작가로 끌어들여 다양한 홍보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국내 미술계는 10주기를 계기로 다양한 추모행사와 전시회를 마련하는 등 긍정적인 요인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백남준의 작품값(경매 최고가 7억원 기준)은 동시대에 활동한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900억원)의 128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화랑과 미술관들이 백남준 재조명에 열을 올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갤러리 현대는 오는 28일부터 기획전 ‘백남준, 서울에서’를 시작한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9일 특별전 ‘손에 손잡고’를 열고, 하반기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디지털시대 사상과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융합한 ‘NJP 링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국내외 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 소장품을 모아 페스티벌 형식으로 추모전을 준비 중이다.

◆민중미술, 추억상품으로 부상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계기로 한 복고 열풍이 미술계에도 불어닥칠 전망이다.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미술이 ‘역사 속의 추억상품’으로 부각되면서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미술 1세대 작가 오윤을 비롯해 황재형 강요배 작품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고, 신학철 주재환 홍성담 임옥상 이종구 민정기 홍선웅 김봉준 김용태 김인순 김정헌 김준권 노원희 박불똥 박재동 등의 작품도 복고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나아트갤러리는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20일부터 ‘한국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2-시대의 고뇌를 넘어, 다시 현장으로’라는 타이틀로 1980년대 민중미술 기획전을 시작한다. 12월에는 강원 태백 탄광촌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화폭에 담아온 황재형 씨의 개인전을 연다.

학고재화랑은 민중미술 1세대 서양화가로 꼽히는 주재환(3월), 한국 민중미술 대표 작가 신학철(9월)의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우찬규 학고재화랑 대표는 “386세대 기업가를 비롯해 의사 변호사 등 일부 신흥 부유층이 6·10항쟁 (1987년) 30년을 앞두고 ‘역사적 산물’이나 ‘추억 상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값도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희귀 고미술품에도 주목하라

지난해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조선시대불화 청량산괘불탱(淸凉山掛佛幀)이 국내 고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면서 고미술품 시장에도 ‘온기’가 돌 것이란 예상이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 도자기나 옛 서화, 근대 한국화 등의 작품값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저가 고미술품 매물이 쏟아져나오면서 수익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K옥션은 지난해 말 경매회사 ‘옥션 단’을 전격 인수, 이름을 ‘옥션 온’으로 바꿔 고미술 부문 온라인 경매에 힘을 쏟고 있다. 아이옥션은 오는 3월 온라인 경매 시스템을 완비해 디지털 세대를 겨냥한 다양한 고미술품을 경매할 예정이다. 서울옥션도 홍콩과 메이저 경매에 별도의 고미술 섹션을 설치해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화랑가에서는 다보성갤러리가 다음달 말 ‘고미술 명품’전을 펼치고, 노화랑(5월·문기가 있는 그림전), 학고재 화랑(5월·민화전), 한국고미술협회(9~10월·고미술 장터)도 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새해에도 단색화 열기…뉴욕·파리·런던 등 전시 잇따라

단색화가 권영우의 ‘무제’.
단색화가 권영우의 ‘무제’.
파리 런던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미국과 유럽 화단에서는 올해도 단색화 열풍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작가들의 전시 라인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파리 메이저 화랑인 갤러리페로탱은 단색화가 ‘최명영 이승조 서승원’ 3인전을 마련해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단색화를 보여주고 있고, 런던 화이트큐브갤러리는 오는 3월12일까지 박서보 화백의 개인전을 열어 ‘묘법’ 시리즈를 선보인다.

로스앤젤레스 블럼&포갤러리(1월·단색화와 미니멀리즘), 벨기에 악셀 베르보르트갤러리(2월·윤형근), 뉴욕 도미니크레비갤러리(5월·정상화), 뉴욕 블럼&포갤러리(5월·권영우), 런던 사이먼갤러리(10월·윤형근)도 단색화전을 준비 중이다.

또 벨기에 보고시안재단은 올 상반기 현지에서 단색화를 주제로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정창섭 정상화 하종현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열 계획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