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한국의 주력 해외건설시장인 중동에서 발주가 급감했다. 유가 하락으로 재정상태가 악화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의 자본 회수로, 과거 유가 급등으로 겪었던 오일쇼크의 반대인 ‘역(逆)오일쇼크’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건설뿐 아니라 철강, 조선, 해운 등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온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모두 유가 급락에 동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쇼크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중동의 양대 산맥인 사우디와 이란이 연초부터 격돌하면서 우울한 전망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과연 중동 시장은 당분간 무시해도 좋을 만큼 위축되는 것인가.

중동이라고 해도 우리가 주력시장으로 쳐다보는 곳은 산유국인 6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와 이란으로 압축된다. 이 양대 진영은 종교적으로 수니파와 시아파로 양분돼 있다. 게다가 민족이나 언어도 다르고, 역사적으로도 서로 물고물리는 적대관계를 지속해 왔다. 연초부터 사우디의 시아파 성직자 처형과 이에 반발한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대한 공격 행위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두 세력은 지역 헤게모니를 위해 시리아, 예멘 등 인근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대리전을 벌였다. 이번 사태도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사우디 측이 미국의 과도한 이란 접근을 경고하기 위해 벌인 의도적인 행동이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연초부터 중동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기는 했지만 새로울 것은 없다. 이 두 세력 간에는 상호 직접 교역량도 미미해서 최근의 대립관계 심화가 상대방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크지 않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요즘의 중동정세 변화로 앞으로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석유에 의존하는 GCC 국가들의 재정적자가 얼마나 심화될지, 그로 인한 각종 대형사업의 발주 전망이 어떨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지난해 여름 핵협상 타결로 올해 새로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란시장이 예상에 부합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유가 하락세 이어질 것

유가에 대해서는 과거와 달리 중동정세의 불안정이 유가 반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견해는 약하다. 이미 세계적으로 과잉공급 상태인 데다 이란은 이번 경제제재 해제와 함께 증산에 적극 나설 전망이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더 깊어진 재정적자로 당분간 감산이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달러화의 강세 전망도 유가 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반면 GCC 국가들의 재정적자는 올해 다소 개선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추계에 따르면 유가 폭락으로 인한 GCC 국가들의 재정적자가 작년에 역내 국내총생산(GDP)의 13.2%에 달했다. 사우디와 오만은 20%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초유의 사태라고 할 수 있는데 올해에는 다소 줄어든 12.6%로 전망된다. GCC 국가들이 지난해 12월 긴급 재무장관 회의를 열어 IMF의 권고에 따라 부가가치세, 법인세 등을 새로 도입하기로 결의했고 전력요금, 수도세 등을 대폭 인상하는 한편 휘발유, 경유 등 에너지에 지원하던 보조금은 낮추는 조치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재정수입의 80%가량을 석유수출에 의존하고 조세수입은 3%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안정적인 재정 운용이 어렵다. 작년 말 조치는 이런 재정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 투자한 국부펀드를 회수하고 사우디의 초대형 기업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미래를 위해 유보된 국고수입으로부터 당장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운영하는 모든 사업이 당분간 위축될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계획했던 대형 투자 사업들도 연기하거나 취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민간 섹터가 취약한 GCC 국가들은 주요 사업이 대부분 재정사업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수주해 진행 중인 각종 사업도 당분간 대금지급 등 제반 조건이 빡빡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므로 잘 대처해야 할 것이다.

민자개발사업은 확대될 듯

그렇다고 당분간 중동시장은 쳐다볼 것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가장 활발한 투자시장인 UAE와 카타르, 쿠웨이트의 재정상황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게다가 UAE는 2020년 두바이 세계엑스포,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 개최라는 큰 행사를 안고 있어 계획한 투자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우디도 성지 보수, 동서횡단 철도 건설 등 전략적인 부문에 대한 투자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현재 국가재정이 어려워 민자를 이용한 투자개발사업 쪽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로선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걸프만 넘어 이란의 상황도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친(親)서방적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중심으로 최근 개혁파가 득세하고 있고, 이번 서방의 제재 해제로 그간 억눌려온 이란 국민들의 경제난 해소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다. 일부 폭도가 테헤란의 사우디 대사관에 난입해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지만 정부도 곧바로 유감을 표시하고 관련자 색출을 지시하는 등 모처럼 맞은 경제재건의 기회를 포기할 뜻이 없어 보인다. 이란은 현지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나라다. 인구가 8000만명에 달하고, 매장량 기준으로 가스 세계 2위, 석유 세계 4위의 에너지 강대국이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이번에 경제재건에 나선다면 한국에 대단히 귀중한 큰 시장이 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서둘러 개척을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의 수출은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수록 수출시장 다변화와 숨어 있는 시장에 대한 개척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동은 우리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시장이다.

이란은 '중동의 신천지'

건설, 전자, 플랜트뿐 아니라 생필품, 의약품, 농산물 등 대부분 물자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들에는 다양한 시장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진출해 있는 수많은 서구 기업들이 증명하고 있다.

권태균 < 전 주UAE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