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평가했다는 뉴스는 모처럼 정치권에서 나온 정상적인 언어다. 물론 토를 달았다.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이해해달라”는 사족까지 붙였다. 실망스럽게도 금세 꼬리를 내릴 태세다. 김종인의 평가도 비슷하다. “3선 개헌이 없었더라면 국부로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이라는 마지못한 어투다. “…국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본인 스스로 망가뜨렸다”고도 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아직도 그렇게 금기어적 어법의 지배를 받는다. 천사 아니면 악마라는 유아적 도식이 여전히 이항대립적 역사의식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있기 때문에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국부가 아니라는 주장은 무식하거나 사악한 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들은 이승만이 상하이 등 여러 개 임정의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사전들이 이승만을 3·15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쓰고 있는 것도 오류다. 부정하게 당선된 것은 이기붕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고 생각하는 부류는 백년전쟁이라는 가짜 영상물까지 만들어 이승만을 왜곡하는 데 정성을 들인다. 여성들이 그를 가운데 놓고 질투하던 사건까지 끄집어내 무언가의 치정사건처럼 엮어 보려는 갖은 시도들이다.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특히 인기있는 수법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인의 반일 의식이야말로 실은 그가 심어놓은 검은 유산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도 반일의식도 열심히 가르쳤다. 초대 내각에 친일파를 기용한 것은 김일성이지 이승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우물안 개구리였던 당시 정치인들에게 국제정세를 자세히 가르쳐야만 했다.

박정희를 흠모하는 사람들도 이승만을 폄훼한다. 이승만을 높일수록 박정희의 경제 기적이 깎여 나간다는 순진한 도식 때문일 것이다. 4·19세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은 아직도 죽은 사람과 투쟁하고 있다. 정치적 출생증명서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경쟁적으로 초대 대통령 동상 부수기 운동을 한다. 새누리당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그런 범주에는 아쉽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포함된다. 박 대통령은 작년 8·15 기념사에서 ‘이승만’ ‘건국’ ‘국부’ 이런 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상하이 임정으로 곧바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교과서 바로잡기라니 … 걱정된다!

이승만 국부론이 단순히 그가 정부를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지는 호칭은 아닐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로 기운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돌려놓았다.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은 지하자원, 수산자원까지 모두 국유로 천명할 정도로 사회주의적이었다.(제85조) 운수 통신 금융 보험 등의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하고,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하에 두었다.(제86조) 그리고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하거나 경영을 통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제87조) 제헌헌법의 이 같은 조항들은 1954년 제2차 개헌에서 비로소 시장경제로 바뀌었다. 경영 통제 조항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통제할 수 없다’고 개정됐고, 무역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통제한다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은 비로소 자본주의 국가로 태어난 것이다. 놀랍게도 그리고 운명적이게도 이 2차 헌법 개정은 그 유명한 사사오입이라는 편법을 통해 이뤄졌다.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른다. 그나마도 김일성과 6·25전쟁을 치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의 이익은 근로자가 균점한다는 사회주의 조항(헌법 제18조)의 폐기는 1962년 5차 헌법 개정, 다시말해 박정희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이승만이 길을 닦고 박정희가 달렸다. 영웅 아닌 자가 있겠으며 특히나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그 자리에 놓을 것인가. 정치판 책사들의 입방아가 그나마의 일보 전진이라며 박수라도 쳐야 하는 것인지 ….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