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오일쇼크, 더 커진 유가 불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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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락하는 유가, 배럴당 30달러선 붕괴
고유가에 적응해온 산업엔 큰 타격
저유가 낯선 장벽 슬기롭게 넘어야"
손양훈 < 인천대 교수·경제학 >
고유가에 적응해온 산업엔 큰 타격
저유가 낯선 장벽 슬기롭게 넘어야"
손양훈 < 인천대 교수·경제학 >
국제 원유가격이 속락하고 있다. 배럴당 30달러 선이 무너졌다. 예상을 넘어서는 빠른 하락세다. 올해 평균 유가를 배럴당 50달러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하던 각 기관은 새해 벽두부터 서둘러 예측치를 낮추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이 확대되고 있어 중동국가들이 주도하는 감산은 무망해졌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도 곧 국제 원유 시장에 전면 복귀할 전망이다. 러시아와 다른 산유국들은 재정수입 부족으로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재고가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공급량을 밀어올리는 힘은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에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침체국면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유가가 회복되는 시점을 더 늦춰 잡아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면 1980년대 말의 저유가 시대와 거의 맞먹는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가치로 따지면 그 때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유가가 역사적 최저점에 근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고는 쌓이고 공급은 넘쳐난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은 기나긴 고유가 시대를 경험했다. 지속적인 고유가는 산유국과 석유개발 사업자를 엄청나게 자극했다. 탐사와 개발이 어려워 내버려 뒀던 한계유전까지 모두 투자 대상이 됐다. 심해이건 동토이건 투자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본 것이다.
산유국과 석유개발 사업자들의 성대한 파티가 줄을 이었다. 때마침 유동성이 풍부하던 금융은 여기에 돈을 아낌없이 부어 넣었다. 고유가 시대의 에너지 투자는 가히 홍수라고 할 만했다. ‘홍수 투자’의 효과는 놀라웠다. 미국의 셰일혁명은 에너지 공급의 근간을 바꿔버렸다. 기술적 진보를 통해 배럴당 60달러 정도의 가격이면 공급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셰일가스의 등장은 자신들만이 석유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석유수출국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4년 여름을 고비로 고유가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저유가는 수입국인 한국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낮은 가격에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분명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역(逆)오일쇼크라고 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에너지를 싸게 사올 수 있다는데도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산유국이 아니지만 경제는 고유가 시대에 적응하도록 이미 변했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그 어려운 여건을 힘들게 헤쳐나오면서 역설적이게도 진화하게 됐다. 원유를 비싸게 사올 수밖에 없었지만 석유제품이나 석유화학제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여 대량으로 수출하는 길을 찾아냈다. 에너지를 처리하는 설비가 필요한 산유국들에 플랜트를 건설해 줬고, 이들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이나 해상플랜트를 만들어 팔았다. 그렇게 해서 에너지 수입의 막대한 부담을 벌충하는 경제로 진화한 것이다. 시장이 저유가로 변했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유가로 인한 좋은 일은 시간이 걸리지만 장치산업의 고난은 즉각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에너지 시장에서 새로운 질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유가의 불안정성’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긴 사이클을 두고 투자의 홍수가 왔고, 이번에는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투자의 부침은 시간을 두고 유가의 불안정성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는 이런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운명을 갖고 있다.
한국 경제는 고유가에도 살아남았다. 소득 3만달러의 기초가 된 중후장대 산업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 유가의 불안정성이라는 낯선 벽 앞에 다시 서게 됐다.
손양훈 < 인천대 교수·경제학 yhsonn@gmail.com >
재고가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공급량을 밀어올리는 힘은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에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침체국면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유가가 회복되는 시점을 더 늦춰 잡아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면 1980년대 말의 저유가 시대와 거의 맞먹는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가치로 따지면 그 때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유가가 역사적 최저점에 근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고는 쌓이고 공급은 넘쳐난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은 기나긴 고유가 시대를 경험했다. 지속적인 고유가는 산유국과 석유개발 사업자를 엄청나게 자극했다. 탐사와 개발이 어려워 내버려 뒀던 한계유전까지 모두 투자 대상이 됐다. 심해이건 동토이건 투자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본 것이다.
산유국과 석유개발 사업자들의 성대한 파티가 줄을 이었다. 때마침 유동성이 풍부하던 금융은 여기에 돈을 아낌없이 부어 넣었다. 고유가 시대의 에너지 투자는 가히 홍수라고 할 만했다. ‘홍수 투자’의 효과는 놀라웠다. 미국의 셰일혁명은 에너지 공급의 근간을 바꿔버렸다. 기술적 진보를 통해 배럴당 60달러 정도의 가격이면 공급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셰일가스의 등장은 자신들만이 석유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석유수출국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4년 여름을 고비로 고유가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저유가는 수입국인 한국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낮은 가격에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분명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역(逆)오일쇼크라고 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에너지를 싸게 사올 수 있다는데도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산유국이 아니지만 경제는 고유가 시대에 적응하도록 이미 변했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그 어려운 여건을 힘들게 헤쳐나오면서 역설적이게도 진화하게 됐다. 원유를 비싸게 사올 수밖에 없었지만 석유제품이나 석유화학제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여 대량으로 수출하는 길을 찾아냈다. 에너지를 처리하는 설비가 필요한 산유국들에 플랜트를 건설해 줬고, 이들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이나 해상플랜트를 만들어 팔았다. 그렇게 해서 에너지 수입의 막대한 부담을 벌충하는 경제로 진화한 것이다. 시장이 저유가로 변했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유가로 인한 좋은 일은 시간이 걸리지만 장치산업의 고난은 즉각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에너지 시장에서 새로운 질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유가의 불안정성’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긴 사이클을 두고 투자의 홍수가 왔고, 이번에는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투자의 부침은 시간을 두고 유가의 불안정성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는 이런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운명을 갖고 있다.
한국 경제는 고유가에도 살아남았다. 소득 3만달러의 기초가 된 중후장대 산업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 유가의 불안정성이라는 낯선 벽 앞에 다시 서게 됐다.
손양훈 < 인천대 교수·경제학 yhsonn@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