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사회
얼핏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미국 사회의 단면이 세 가지 있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선거 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식지 않는 인기, 총기 사고가 세계 1위인데도 규제를 받지 않는 총기 거래,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풀어도 꿈쩍하지 않는 물가가 그런 것들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2일 유세 도중 “힐러리가 2008년 대통령선거 경선 때 ‘×됐다’(got schlonged)”고 말한 적이 있다. 옥스퍼드 혼비영영사전에 없는 단어다. 이 표현의 뜻을 찾기 위해 한참 인터넷을 뒤져야 했다.

욕하는 트럼프의 인기

그는 지난해 8월에는 TV토론회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을 던진 여성 앵커에게 ‘빔보’(bimbo·섹시한 외모에 머리 빈 여자를 폄하하는 비속어)라고 욕하기도 했다. 주위 미국인에게 물어 보니 ‘교양 있는’ 사람은 쓰지 않는 ‘천박한 단어’라고 했다. 대선 주자가 입에 담을 만한 단어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최근 유세에서 ‘×새끼’(son of bitch)라는 단어도 썼다. 발언 배경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정치인의 지적·도덕적 수준을 의심케 하는 단어다. 이런데도 트럼프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미국은 전 세계 민간 보유 총기(6억4400만정)의 42%(2억7000만정)를 갖고 있다. 2013년 7월 기준 미국 전체 인구가 3억1000만명이다. 통계로만 보면 유아 빼고는 전 국민이 총 한 자루씩을 갖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총기 사고로 하루 평균 90여명, 연간 3만명 넘게 사망했다. 총기 사고를 줄이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눈물을 흘리며 총기 규제를 호소했다. 테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나 정신이상자에게 총을 판매하지 않도록 사전 신원조회를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얼핏 보면 지금까지 그런 규제가 없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상식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무장을 통한 자기방위권’을 보장한 수정헌법 제2조 옹호론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까지 진전이 없다. 치안 문제에서조차 ‘개인의 자유와 자기책임 원칙’을 지키려는 미국의 모습이 많은 한국 사람에겐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과도한 공포심에서 벗어나야

미국은 지난 7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덕분에 실업률이 완전 고용 수준에 가깝게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소비가 살아나고 물가도 뛰어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미국에서 팔리는 휘발유 값이 갤런당 1달러대로 뚝 떨어진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늘어나는 저축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이런 요인만으로는 미국의 물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책 당국자들조차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 사회가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정상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다양한 인종 유입으로 미국 사회의 주류였던 백인 중 일부가 ‘일자리 등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과도한 피해의식, 시민 안전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공포 등에 눌려 있다는 지적이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인들은 불만과 절망에 빠져 있다”며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말 치러질 예정인 대통령선거에서 미국인들이 공포를 함께 극복해나갈 정치 지도자를 뽑기를 기대한다.

워싱턴=박수진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