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투자한 싱가포르 쇼핑몰. 안상미 기자
국민연금이 투자한 싱가포르 쇼핑몰. 안상미 기자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세계 3대 사모펀드 운용사)에서 사람을 뽑아올 수 있나요? 아니면 해외에 사무소를 낼 이유가 없죠.”

2014년 여름 캐나다 토론토. 론 모크 온타리오교직원연금(OTTP) 회장은 싱가포르 사무소 개소를 앞두고 자신을 찾아온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들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우수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국민연금 관계자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서야 했다. 몇 개월 뒤 국민연금 뉴욕사무소는 23세의 젊은 현지 운용역을 민간 운용사에서 영입하려고 했다. 그가 요구한 기본 연봉은 3억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연봉(2억7000만원)보다 높은 액수였다. 국민연금은 채용을 포기했고 그 운용역은 중국 국부펀드에 영입됐다.

전문가 영입? 현실은 이탈 걱정

한국의 양대 ‘큰손’인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의 운용자산이 각각 500조원과 110조원으로 불어나면서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작년 11월 두 기관이 1주일 차이로 서울에서 각각 포럼을 열었을 때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이 1주일에 두 번 뉴욕과 서울을 오가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보상 체계 및 운용 시스템 모두 경쟁사에 크게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캐나다연금을 운용하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의 팀장급 연봉은 최소 10억원. 국민연금 실장급 운용역의 8배다. CPPIB는 이렇게 높은 연봉을 제시하면서 블랙스톤, KKR 등 세계 최정상급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인재 영입은커녕 내년 전북 전주로의 이전을 앞두고 기존 인력의 이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작년에만 9명의 운용인력이 회사를 나갔다. 전문가들은 “해외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현지의 우수한 운용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과 KIC의 런던사무소 운용역은 각각 9명과 11명이다. CPPIB(100명)나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140명) 등 경쟁 상대에 비해 훨씬 적은 숫자다. GIC의 한 관계자는 “해외 투자는 현지에서 결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전체 운용인력(500명)의 70%(350명)가 해외에서 근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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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운용자산 캐나다 연금의 13배

인력의 전문성은 물론 절대적인 인원도 부족하다. CPPIB는 약 240조원을 1200명이 운용한다. 1인당 운용자산이 2000억원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약 200명의 인력이 500조원을 운용하고 있다. 1인당 운용자산(2조5000억원)이 CPPIB의 약 13배다. 최근 5년간 CPPIB의 수익률은 12.8%, 국민연금은 5.8%였다.

인력도 부족한 데다 투자를 한 번 집행하려면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다 보니 국민연금과 KIC는 좋은 투자 물건을 눈앞에서 놓치는 사례도 많다. 유럽 최대 PEF 운용사 퍼미라의 크리스 데이비슨 파트너는 “2014년 CPPIB와 공동으로 미국 데이터통합회사 인포머티카 경영권을 인수했는데 53억달러(약 6조2500억원)짜리 계약 체결에 걸린 시간이 4주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은 조(兆)단위 대형 투자를 결정하는 데 최소 2개월이 걸린다.

정치권이 좌지우지하는 경영진 인사도 문제다. 최근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PG)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안젤린 켐나는 5년 동안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낸 인물. 마크 와이즈먼 CPPIB 회장도 2005년 CPPIB에 합류해 2012년 CEO로 승진했다. 2~3년에 한 번 외부에서 CIO를 뽑는 국민연금과는 정반대다.

복재인 타워스왓슨 아시아 연기금·국부펀드 담당 사장은 “선진 연기금은 CEO나 CIO 중 한 명은 반드시 내부 전문가를 승진 기용한다”고 말했다. 복수의 후보자들에게 주요 보직을 맡겨 운용 실력과 조직 관리 능력을 철저히 검증한 뒤 경영진으로 선임한다는 의미다.

■ 6조2912억달러

세계 자산운용사가 보유하고 있는 대체투자 자산 규모다(글로벌 컨설팅회사 타워스왓슨 집계). 정부나 기업, 개인이 아니라 펀드가 갖고 있는 부동산 인프라 기업 등의 가치가 이 정도 된다는 얘기다. 세계 상장사의 지분 10%를 살 수 있는 규모다.

런던=좌동욱/싱가포르=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