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파울러가 24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GC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아부다비HSBC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리키 파울러가 24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GC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아부다비HSBC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 골프팬의 눈은 두 명의 ‘차기 황제’에게 쏠려 있었다.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미국)와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다. 노쇠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뒤를 이을 진정한 실력자가 누구냐는 게 관심이었다. 영국 도박사들은 매킬로이의 우세를 점치기도 했다. 발목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라식 수술로 ‘그린 보는 눈’까지 좋아졌다는 이유에서다. ‘빅2’에만 쏠렸던 관심이 이제 ‘오렌지 보이’ 리키 파울러(미국)로 옮겨갈 참이다.

◆더블보기 직후 매직 벙커샷 이글쇼

남자프로골프 세계랭킹 6위 파울러가 24일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GC(파72·7600야드)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아부다비HSBC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날 이글 1개, 버디 3개, 더블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를 친 그는 최종 합계 16언더파로 생애 네 번째 우승컵을 차지했다. 경기 내내 파울러를 끈질기게 추격한 2위 토마스 피터스(벨기에)와는 1타 차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주로 뛰는 파울러는 초청자 자격으로 출전한 EPGA투어에서 새해 첫승을 올리며 ‘실력과 스타일’을 겸비한 차기 골프스타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스피스, 매킬로이, 제이슨 데이(호주) 등 이른바 ‘빅3’로 압축돼 가던 세계 남자골프 ‘차기 황제’ 경쟁 구도도 ‘빅4’로 넓어질 전망이다.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한 파울러는 초반 2개홀 연속 버디로 기세를 올린 뒤 4번홀에서 먼거리 파 퍼트를 홀컵에 떨구며 첫 번째 위기를 넘겼다. 진짜 위기는 8번홀(파3)에서 찾아왔다. 티샷이 그린 오른쪽 모래흙 지역으로 떨어진 것. 이를 빼내기 위해 시도한 로브샷은 건너편 벙커에 다시 빠지고 말았다. 결국 더블보기.

반전이 일어난 것은 바로 다음 홀에서다. 40야드 밖 벙커에서 쳐올린 세 번째 샷이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들어가는 ‘환상의 이글’을 잡아낸 것이다. 이후 파울러는 17번홀에서 칩인 버디를 잡아내며 유일한 추격자인 피터스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었다. 18번홀 2온에 성공한 피터스는 연장전 승부를 노렸지만 회심의 이글 퍼팅은 홀컵 왼쪽 5㎝에 멈춰섰고, 추격전은 무위로 끝이 났다. 파울러는 “최강자들과 겨룬 대회에서 승리한 만큼 올해도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빅2’ 후반 버디, 이글쇼로 이름값

빅2의 새해 첫 대결로 관심을 모은 스피스와 매킬로이의 대결은 매킬로이의 우세로 끝났다. 선두에 3타 뒤진 채 마지막 날을 시작한 매킬로이는 이날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3개로 4타를 줄이며 공동 3위(14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매킬로이는 그러나 2m 안팎의 짧은 퍼팅을 번번이 놓치는가 하면 쭉쭉 뻗어가던 3번우드 티샷까지 자꾸만 감기는 등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 18번홀에서 성공시킨 10m짜리 장거리 이글 퍼팅은 세계랭킹 3위의 자존심을 세워주기에 충분했다.

올해 PGA투어 첫 대회에서 우승하며 ‘차기 황제’ 경쟁 구도에서 기선을 잡았던 스피스도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두에 6타 뒤진 공동 19위로 최종일 경기에 나선 그는 2번홀(파5)에서 버디를 낚으며 추격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4번홀에서 보기를 내주며 달아오르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강력한 무기인 중장거리 퍼팅이 말을 듣지 않았다. 11언더파로 공동 5위.

3라운드까지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스피스, 매킬로이, 파울러와 우승 경쟁을 벌인 안병훈(25·CJ)은 막판 뒷심이 아쉬웠다. 전반 두 개의 보기에 이어 후반 더블보기까지 범하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진 그는 후반에 4개의 버디를 몰아쳤지만 선두를 따라잡기엔 남은 홀이 없었다. 그는 11언더파 공동 5위로 다음 대회를 기약해야 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