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는 한옥에 산다
나는 전통 한옥에 산다. 심지어 문화재다. 서울 혜화동에 지어진 지 110년이 넘은 목조 건물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를 왔으니 50년 넘게 살았다.

긴 시간만큼 사연도 깊다. 처음엔 나무를 땠다. 연탄으로 바뀐 뒤에는 내가 날마다 ‘보초’를 섰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는 사람이 흔한 시절이었다. 방마다 가스가 새는지 코를 킁킁거리던 어린 시절 내 별명은 ‘개코’였다. 군대에 다녀와서야 기름보일러로 바뀌었다.

신혼 초기 아내는 나무 마루에서 나는 “삐걱삐걱” 소리를 무서워했다. 아파트와 달리 사생활도 완벽하게 보호받지 못했다. 한옥 자체가 열린 공간인 탓이다. 한겨울엔 이중창을 달아도 마루 밟는 발바닥에 냉기가 돌고 입에선 김이 났다. 아이들도 “난 한옥에 안 산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장마철이면 기와에서 비가 샐지 노심초사하고, 가을엔 쥐가 나무를 파먹지 못하게 쥐덫을 놓았다.

요즘은 고칠 데가 생겨도 서까래와 기와 다루는 장인을 구하기 힘들다. 당연히 수리비도 만만치 않다. 한옥을 짓는 비용이 양옥보다 세 배 더 든다고 하니 한옥살이를 택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집처럼 문화재로 지정되면 집주인 마음대로 손도 못 댄다. 이런 번거로움 탓인지 집 주변에 그 많던 한옥이 시나브로 사라졌다.

그런데 난 왜 여태 한옥에 사는 걸까. 역설적으로 순전히 집으로서의 실용성과 그 이상의 무형적 가치 때문이다. 한옥은 아파트처럼 고급 브랜드가 없어도 멋스럽게 살 수 있다. 손이 많이 가는 불편함은 거꾸로 우리를 좀 더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폐쇄적인 사생활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줬다. 한옥 특유의 여백과 곡선미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운다. 여기에서 우리 아이들은 감수성이 고운 어른으로 자랐다.

오래된 한옥이 주는 따뜻함은 우리집을 지나가는 뭇 사람들도 위로한다. 내가 한옥 지킴이 운동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요즘은 조선 정조 때 지어진 전북 정읍의 김동수 가옥 보존을 도울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만약 내가 수십 년 동안 이 집에 살지 않았다면 한옥의 진정한 매력을 알았을까.

뒤늦게 고백한다. 나는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닫기 전 “이 전통 한옥을 그대로 두면 한이가 커서 부숴 먹을 게 뻔하다”고 조언했던 어느 교수님께, 그리고 이 말에 “일리가 있다”며 일찍이 이 집을 문화재로 등록하신 아버지께.

김한 < JB금융그룹 회장 chairman@jbf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