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국가 간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 방지 체계를 도입하면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거대 다국적 기업만 충격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해외에 생산공장과 자회사를 두고 있는 국내 중견 수출기업도 영향권에 들어온다. 해외법인별 운영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각국 과세당국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로열티 비율을 나라별로 다르게 책정하거나 기술로열티가 아니라 다른 항목으로 이익을 한국으로 가져온다면 현지 국가에서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세금 폭탄’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게 회계업계의 분석이다.
해외법인 운영 민낯 드러나면…들쭉날쭉 로열티에 '세금폭탄' 가능성
◆해외법인별 수익회수 방법 노출

자동차부품을 해외 공장에서 생산해 현지에서 판매하는 A회사의 사례를 보면 어떤 충격이 예상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A회사는 3개국에서 현지법인 형태의 제조공장을 갖고 있다. 2000년 중국에 진출했고 2010년과 2012년에는 각각 베트남과 필리핀에 공장을 세웠다. 이들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한국으로 들여오지 않고 모두 현지에서 판매한다.

A회사는 3개국 자회사에서 발생한 이익을 기술로열티나 서비스료로 거둬들이고 있다. 중국법인에서는 매출의 4%를 한국 본사로 가져온다. 베트남법인의 기술로열티는 매출의 2%다. 필리핀에서는 기술로열티가 아니라 단순 서비스료를 받는 구조다. A회사가 보유한 기술을 사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필리핀 자회사의 사업을 도와준다는 개념이다. 필리핀에서는 기술로열티를 한국으로 송금할 때는 세금을 원천징수하지만 서비스료는 원천징수 대상이 아니어서 서비스료로 처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A회사는 이 같은 사업구조를 아무런 문제 없이 유지할 수 있었다. 각국의 과세당국은 자국 내 세법에 따라 제대로 세금을 냈는지만 확인했기 때문이다. A회사가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세금을 냈는지는 알지 못했다.

◆국가별로 추가 과세 가능성 높아져

BEPS가 시작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각국 과세당국이 세금을 추가로 걷겠다고 나올 수 있다. BEPS 시행으로 중국 과세당국은 A회사의 중국법인이 매출의 4%를 기술수수료로 내지만 베트남법인은 절반밖에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알게 되면 중국 과세당국은 A회사의 중국법인이 기술로열티를 과도하게 지급했다는 이유로 추가 과세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법인의 비용 산출이 잘못됐다는 판단에서다. 비용을 늘리는 방법으로 수익 규모를 줄였고 세금도 적게 냈으니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베트남 정부가 A회사의 베트남법인이 기술수수료를 줄여서 신고했다는 이유로 세금을 돌려줄 가능성은 많지 않다.

필리핀 과세당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있다. 원천징수 소득으로 분류되는 기술로열티가 아니라 서비스료로 처리해 자국에서만 세금을 회피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어서다. 결국 A회사는 베트남을 제외한 2개국에서 세금 부담 증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익회수 정당성 설명하기도 쉽지 않아

A회사도 할 말은 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달라 수익회수 방법을 일괄적으로 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15년 전 중국에 진출했을 때는 중국 내 다른 자동차부품 제조회사들이 본사에 지급하고 있는 로열티율 수준을 참고해서 결정했다. 마진이 높아 이익을 많이 가져와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는 설립 초기 이익 수준이 낮았고 설비투자 자금도 많이 들어 로열티를 많이 거둬들일 수 없었다. 필리핀은 서비스료 등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등의 사정을 감안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각국 과세당국이 수용해줄지는 의문이다. 다른 회사가 비슷한 수준의 로열티를 책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세당국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정환 삼일회계법인 상무는 “기술로열티 산출의 적정성을 제대로 증명할 수 없으면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