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양동의 구경성양꼬치 가게 사장인 중국 동포 이학범 씨가 양꼬치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그는 1997년 한국에 와 연매출 25억원의 사업체를 일궜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서울 자양동의 구경성양꼬치 가게 사장인 중국 동포 이학범 씨가 양꼬치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그는 1997년 한국에 와 연매출 25억원의 사업체를 일궜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한국의 많은 젊은이가 취업난으로 좌절하는 상황에서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하면 된다”며 ‘코리안 드림’을 일궈나가고 있다. 대부분 이주노동자가 현장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가운데 이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고용주로 발돋움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에 개인 또는 법인 사업자등록을 한 외국인은 2014년 기준 3만2000여명이다. 통계 파악이 가능한 2000년 2000명에서 14년 새 약 16배로 늘었다.

이주노동자 출신 사업가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다”며 “한국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매출 25억원 사장으로

서울 자양동 ‘구경성양꼬치’ 사장인 이학범 씨는 중국 동포 출신으로 1997년 한국에 왔다. 외환위기 시절 일자리가 없어 공사장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했다. 한국 근로자가 일당 7만원을 받을 때 중국 동포라는 이유로 5만원을 받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 사장은 “‘싫으면 딴 데 가든가’라는 말을 듣는 게 더 비참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어느 겨울날 공사장 일을 하다 얼굴을 다쳤다. 일하다 흘린 땀에 미세한 시멘트 가루와 조각들이 엉겨붙어 있는 것을 급한 대로 찬물로 씻다가 피부 위에서 굳어버린 시멘트 조각이 손가락에 밀려 피부와 함께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 사장은 “중국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았을 때도 눈물을 참았는데 그때는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4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2001년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양꼬치 가게를 차렸다.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지인들에게 홍보하고 한국인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도록 강한 향신료를 뺐다. 손님이 차츰 늘어 개점 4년차엔 2호점을 열었고 5호점까지 늘렸다가 올해 4개로 줄였다. 5개 매장의 연매출이 지난해 25억원을 넘었다. 직원은 한국인 5명을 포함해 총 20명이다. 이 사장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빨라 기회가 많아 보이지만 한국이야말로 노력하는 대로 거두는 곳이다”고 강조했다.

요리사 경험 살린 우즈베크 음식점 성공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사리요프 씨는 서울 광희동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의 ‘중앙아시아타운’으로 불리는 거리에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사마리칸트’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4개를 포함해 전국에서 8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사업하던 할아버지 지인의 권유로 1998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어가 배우기 어렵고 음식도 입에 잘 맞지 않아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며 회사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숙소로 제공한 컨테이너에서 먹고 잤다. 원래 요리사였던 사리요프 씨는 본국의 집을 판 돈으로 2001년 광희동에 사마리칸트를 열었다. 주로 러시아인과 우즈베키스탄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던 중 색다른 음식을 찾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식당이 번창하면서 고향에 있는 형제와 친척들을 불러들였다. 전국 8곳의 음식점은 그와 형제들과 친척들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식당마다 두 명의 직원을 두고 운영하면서 다달이 1000만원 이상씩 번다”며 뿌듯해했다.

한국 기업史까지 공부해 이룬 꿈

서울 이태원동에서 인도 음식점 ‘봄베그릴’을 운영하는 자베드 이크발 씨는 파키스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펀자브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인재다. 대학 졸업 후 아일랜드로 건너가 한 부동산 투자회사에서 일했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고 보수도 만족스럽지 않아 고민하던 중 한국에 먼저 정착한 친구의 제안으로 한국행을 택했다. 2004년 4월 홀로 한국에 입국한 그는 경기 양주에 있는 한 인도 식당에 주방 보조로 취업했다. 시급 5500원에 접시닦이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는 틈틈이 한국 기업에 대해 공부했다. 한국에서 사업하기 위해선 한국 경제의 논리와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성, 현대, LG, 금호 등 대기업이 어떻게 사업을 일궈 어떻게 성공을 이뤘는지를 연구했다. 2006년 이태원으로 둥지를 옮겨 파키스탄 음식점에서 매니저를 맡았다. 차곡차곡 돈을 모아 2014년 4월 마침내 독립해 ‘봄베그릴’을 차렸다. 지금은 한국인 2명을 포함해 직원 5명을 거느리고 매달 4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 파키스탄 출신 자베드 씨

[간호사 파독 50주년] 일당 5만원 인부서 연매출 25억 사장으로…"한국은 기회의 땅"
한국은 노력에 대한 응답이 있는 기회의 땅이다. 기회를 파고들기만 한다면 다음 세대에도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마지혜/황정환/고윤상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