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청년배당, 쾌락 위해 영혼 팔라는 '메피스토' 유혹
《파우스트》는 천상에서 신과 악마 ‘메피스토’가 나누는 대화로 시작된다. 메피스토는 신으로부터 파우스트에게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메피스토는 쾌락적 삶을 선물하는 대신 영혼을 넘겨받기로 파우스트와 계약을 맺고 그를 20대 청년으로 탈바꿈시킨다. 파멸이 예정된 파우스트지만 100세 노년에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눈을 뜨면서 구원받는다.

경기 성남시가 ‘청년배당’을 강행했다. 성남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시민 약 1만1300명을 대상으로 1인당 12만5000원의 상품권을 올 1분기 몫으로 지급했다. 1년으로 환산하면 50만원이다. 청년배당은 임의적 재량적 복지다. 기여한 바에 관계없이, 경제 능력도 평가받지 않은 상태에서 연령만으로 수혜자가 자동적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재정부담은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도덕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헬리콥터 살포식 무상복지’가 제공됐다는 사실 그 자체다. 청춘들은 정치적 포퓰리즘의 달콤한 유혹에 자신의 영혼을 넘겨준 것이나 진배없다. 포퓰리즘의 주술을 건 정치인은 메피스토와 다를 바 없다.

청년배당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재정배당’을 이야기한다. 각종 소득세는 명목소득에 근거해 부과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따른 세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세당국은 정기적으로 한계세율을 낮추거나 소득구간을 상향 조정해 준다. 납세자를 주주로 의제해 세부담을 낮춰주는 것을 배당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성남에 현주소를 둔 특정 연령이 배당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금고(金庫)는 무제한일 수 없다. 성남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상위권이지만 무상복지를 쏟아낼 만큼 재정여력이 튼튼하지 않다. 성남시는 이미 공공근로 사업과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등 저소득층 자활 사업을 축소했다. 청년배당을 위해 저소득층 자활 사업 예산을 줄인 것은 치명적인 ‘복지정책의 배임’이 아닐 수 없다.

지자체가 사실상 화폐의 역할을 하는 금융증서를 발행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화폐는 중앙은행의 통화성 부채다. 화폐가 유통되는 이유는 화폐에 상응하는 자산이 중앙은행 회계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면 국가가 징세권을 갖기 때문에 화폐가 유통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자체의 화폐성 증서 발행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소위 ‘깡’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만약 전국의 지자체들이 너나없이 당선을 위해 행정구역 안에서 유통되는 자체 화폐를 발행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청년배당의 지속 가능 리스크에 대해 “시장이 바뀌면 사업이 중단될 수 있으며 이는 모든 정책에 붙는 위험”이라고 강변한다. 사람이 바뀌면 중단될 수 있는 사업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청년배당은 재정에 여유가 있어서라고 한다. 하지만 재정 여건은 구조적인 변수로 단기간에 변하기 어렵다. 성남시의 재정여력 개선은 최근 위례신도시 건설 등으로 인한 일시적 세수 증가일 수 있다. 더욱이 청년배당을 강행하면서 지역주민이 혜택을 보는 누리예산 편성을 고의로 유기한 것은 균형을 잃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법의 제한이 가장 절실한 대상은 ‘자의적 정부’다. 사회보장기본법은 지자체가 새로운 복지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보건복지부와 사전에 협의토록 하고 있다. 자율성을 빌미로 한 포퓰리즘적 복지 경쟁을 막기 위한 장치다. 청년배당도 협의를 마치지 않았기에 법령 위반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명제로 파우스트는 신에 의해 구원된다. 하지만 청년들은 정치 포퓰리즘에 이용될 뿐이다. 정녕 청년배당이라는 독배를 마실 것인가.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