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높은 수준의 무역 자유화를 지향하는 TPP가 향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제무역 규범’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만 ‘외톨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7차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를 열고 TPP 협정문 분석 결과 및 국내에 미칠 영향에 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올해 안에 ‘TPP 로드맵’을 수립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TPP 가입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형환 장관(오른쪽) 주재로 ‘제7차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회의’를 열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주요 통상 현안을 논의했다. 주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TPP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형환 장관(오른쪽) 주재로 ‘제7차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회의’를 열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주요 통상 현안을 논의했다. 주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TPP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미 FTA와 비슷한 수준”

정부와 민간 자문위원은 TPP가 기존 한·미 FTA와 비슷한 개방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TPP의 공산품 자유화 수준은 호주(99.8%), 멕시코(99.6%)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완전 개방(관세 100% 철폐)’에 해당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미 FTA 역시 발효 6년차인 2017년 1월부터 미국 공산품 95.8%의 관세가 철폐되며 캐나다(95.9%), 호주(96.0%) 역시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는 높은 수준으로 시장을 개방해 한국이 TPP에 참여하면 승용차(관세율 20~70%), 화물차(24%), 철강제품(15~30%) 등에 대한 높은 관세가 사라지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미국에 수출하는 일본 자동차부품 가운데 80%의 관세가 즉시 철폐되기 때문이다. 엔저(低) 효과를 누리고 있는 일본 자동차부품업계가 무관세 혜택까지 보면 대미(對美) 수출 가격경쟁력은 더욱 강해진다. 현대모비스 등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들이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비스·규범 수준 높아

공산품 시장만큼이나 서비스 시장의 개방 수준도 높다. 한국이 가입하면 당장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은 ‘국영기업 및 지정 독점’ 조항이다.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국영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방지하는 조항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국영기업이 상대국 산업에 피해를 야기할 경우 TPP 규범 내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소송을 걸 수 있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30여개 기업이 해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등이 이 조항을 넓게 해석하면 산업은행 등도 포함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전의 해외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나 국책은행의 기업 부실 지원 등에 TPP 회원국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별 의무 적용을 받는 국영기업 명단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협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이후 가입 타진”

TPP 12개 가입국은 오는 4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TPP 협정문에 공식 서명한다. 한국이 TPP에 가입하기까지는 2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기존 국가의 비준이 2018년께나 끝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날 위원회에 참석한 A교수는 “TPP가 일러야 2018년 발효될 예상인 만큼 그 사이에 충실히 준비해 가입 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B교수는 “TPP에서 성립된 새로운 무역 규범은 TPP 미가입 국가의 해외 투자·무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그 규범을 빨리 습득하는 게 한국에는 이익”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2년여의 시간이 있는 만큼 서비스·투자 분야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해 TPP 가입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또 연내 ‘TPP 로드맵’을 수립해 가입 절차와 시기 등을 확정하기로 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