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라면 담합'사건 승소 변호사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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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법리에만 치중하다 원심 패소
사실관계 따져보니 담합 '무관'
"증거 디테일 챙겨야" 교훈 얻어
법리에만 치중하다 원심 패소
사실관계 따져보니 담합 '무관'
"증거 디테일 챙겨야" 교훈 얻어
“변호사로서 많이 부족함을 느낀 계기가 됐습니다. 큰 공부가 됐어요.”
‘라면가격 담합 사건’에서 농심 측 혐의를 벗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서혜숙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의 고백이다. 서 변호사는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8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농심을 대리해 원심에서는 패소했지만 작년 12월24일 대법원에서는 승소취지 파기환송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는 원심인 고등법원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변론을 못한 것 같다”며 인터뷰 내내 아쉬움을 내비쳤다.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케이씨엘과 김앤장은 대법원 단계에서는 전략을 변경했다. 각자 업무를 분담한 것이다. 담합의 이론적 부분은 김앤장이 맡되 케이씨엘은 공정위가 제출한 2000쪽에 달하는 증거서류 중 증거 상호 모순되는 내용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와 증언들을 보면 오뚜기가 가격 인상 내역을 전 거래처에 공지한 이후 열린 모임에서 삼양 임원이 “오뚜기는 언제 가격을 올리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면회사 간 담합이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다. 공정위 측에서 ‘정보교환’이라고 지목한 내용들도 “당신 회사 사장님 취임사 내용이 뭐냐” “지난달 매출실적은 어느 정도냐” 등 가격 인상 담합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서 변호사는 “원심 때는 법리에 치중했다”며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뒤 충격이 상당히 컸고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증거와 사실관계를 일자별로 다시 꼼꼼히 따져보니 모순된 내용이 숱하게 발견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의 디테일을 놓치고 경쟁법 이론만으로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원심의 패인이었다는 점에서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서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한수 배웠다”며 자세를 낮췄지만 공정거래와 관련,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한 베테랑이다. 대리점에 ‘물량 밀어내기’로 공정위로부터 124억여원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은 남양유업을 대리해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이강원)로부터 “과징금 중 5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취소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생명보험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변액보험 수수료 담합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28기)을 졸업한 뒤 곧장 케이씨엘에 들어가 공정거래 등 경쟁법 관련 업무 한우물만 팠다. 입사 직후 ‘상대(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나왔으니 경쟁법 분야에서 일해보라’는 선배의 권유를 따랐는데 평생의 전공분야가 됐다.
서 변호사는 불공정기업 제재방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량 밀어내기나 하도급 불법행위 등 피해 당사자가 명확하면 과징금을 매기기보다는 피해 회복을 우선시하자는 것이다. 그는 ‘동의의결’ 제도의 적극적 활용을 제안했다. 동의의결이란 공정위에 불공정 시장행위로 고발된 사업자가 원상회복 또는 피해구제 등 타당한 시정 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라면가격 담합 사건’에서 농심 측 혐의를 벗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서혜숙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의 고백이다. 서 변호사는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8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농심을 대리해 원심에서는 패소했지만 작년 12월24일 대법원에서는 승소취지 파기환송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는 원심인 고등법원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변론을 못한 것 같다”며 인터뷰 내내 아쉬움을 내비쳤다.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케이씨엘과 김앤장은 대법원 단계에서는 전략을 변경했다. 각자 업무를 분담한 것이다. 담합의 이론적 부분은 김앤장이 맡되 케이씨엘은 공정위가 제출한 2000쪽에 달하는 증거서류 중 증거 상호 모순되는 내용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와 증언들을 보면 오뚜기가 가격 인상 내역을 전 거래처에 공지한 이후 열린 모임에서 삼양 임원이 “오뚜기는 언제 가격을 올리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면회사 간 담합이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다. 공정위 측에서 ‘정보교환’이라고 지목한 내용들도 “당신 회사 사장님 취임사 내용이 뭐냐” “지난달 매출실적은 어느 정도냐” 등 가격 인상 담합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서 변호사는 “원심 때는 법리에 치중했다”며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뒤 충격이 상당히 컸고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증거와 사실관계를 일자별로 다시 꼼꼼히 따져보니 모순된 내용이 숱하게 발견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의 디테일을 놓치고 경쟁법 이론만으로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원심의 패인이었다는 점에서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서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한수 배웠다”며 자세를 낮췄지만 공정거래와 관련,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한 베테랑이다. 대리점에 ‘물량 밀어내기’로 공정위로부터 124억여원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은 남양유업을 대리해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이강원)로부터 “과징금 중 5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취소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생명보험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변액보험 수수료 담합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28기)을 졸업한 뒤 곧장 케이씨엘에 들어가 공정거래 등 경쟁법 관련 업무 한우물만 팠다. 입사 직후 ‘상대(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나왔으니 경쟁법 분야에서 일해보라’는 선배의 권유를 따랐는데 평생의 전공분야가 됐다.
서 변호사는 불공정기업 제재방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량 밀어내기나 하도급 불법행위 등 피해 당사자가 명확하면 과징금을 매기기보다는 피해 회복을 우선시하자는 것이다. 그는 ‘동의의결’ 제도의 적극적 활용을 제안했다. 동의의결이란 공정위에 불공정 시장행위로 고발된 사업자가 원상회복 또는 피해구제 등 타당한 시정 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