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사업이 위기에 빠진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지탱하고 있다. 한때 스마트폰 TV 등에 밀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생활가전사업은 지난해 4분기 수천억원씩 흑자를 내며 실적 추락을 막았다.

가전의 부상은 양사 간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다. 양사는 2013년 900L급 냉장고로 시작해 2014년 프리미엄 청소기, 지난해 액티브워시·애드워시(삼성), 트윈워시(LG) 세탁기로 치고받았다. 올해는 ‘속보이는 냉장고’와 ‘바람 없는 에어컨(삼성)’, ‘사람 따라다니며 냉방하는 에어컨(LG)’으로 다시 한판 붙는다. 이런 와중에 두 회사의 글로벌 점유율은 쑥쑥 커지고 있다.
삼성·LG '가전 혁신경쟁'이 실적 끌어올렸다
◆연초부터 ‘세상에 없던 에어컨’ 격돌

LG전자는 지난달 12일 ‘휘센 듀얼 에어컨’을 공개했다. 굳이 온도 조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에어컨이다. 최대 5m, 좌우 105도까지 감지하는 눈(카메라)과 인체감지센서가 사람을 찾아 바람 방향을 조절해준다.

삼성전자는 약 2주 뒤인 지난달 25일 “냉풍이 따라다니면 사람들이 싫어한다”며 ‘무풍 에어컨 Q9500’을 내놨다. 일정 수준으로 온도가 떨어진 뒤엔 표면에 있는 딸기씨보다 작은 13만5000개의 구멍에서 초속 0.15m 이하의 냉기가 조금씩 흘러나와 온도를 유지시킨다. LG전자 측은 “미세한 바람이 나오는데 무풍이라 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조만간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6’에서 공개한 냉장고들을 출시한다. 삼성전자의 패밀리허브 냉장고는 문에 터치스크린을 달았다. 스마트폰을 쓰듯 냉장고 문에서 요리법도 찾아보고 TV도 볼 수 있다. 카메라를 통해 안에 어떤 식품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LG전자의 시그니처 냉장고는 아예 문을 투명하게 제작했다. 평소엔 어두워 안이 보이지 않지만, 냉장고 문을 ‘노크’하면 내부 불이 켜지며 속이 보인다. 삼성 측은 “주부들은 문이 투명한 냉장고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LG 관계자는 “냉장고 문에 스크린을 달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제품은 10년 전에도 있었지만 실패했다”고 받아쳤다. 지난해 삼성이 세탁기 위에 애벌빨래가 가능한 빨래판을 붙인 액티브워시를 내놓자, LG 측이 “바가지를 하나 붙인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LG전자는 대신 드럼세탁기와 전자동세탁기를 하나로 묶은 트윈워시를 출시해 맞불을 놨다.

◆혁신 경쟁이 낳은 실적 동반 호조

두 회사의 치열한 혁신 경쟁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인 북미(미국+캐나다) 가전 시장을 보면 2014년 1분기에는 삼성전자가 10.4%로 5위, LG전자가 13.7%로 4위였다.

하지만 작년 4분기엔 삼성이 점유율 16.6%로 처음 1위를 했고 LG전자는 14%로 월풀(15.7%)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에 소비자가전부문(TV 포함)에서 전 분기(3600억원)보다 127% 증가한 82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009년 3분기 이후 최대다.

LG전자는 4분기 전체 영업이익 3490억원 가운데 생활가전·에어컨 사업을 담당하는 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H&A) 사업본부가 2148억원을 벌었다.

서병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부사장)은 “생활가전 시장이 포화됐다는 분석은 틀렸다”며 “새로운 제품을 원하는 잠재욕구는 여전히 많기 때문에 혁신 제품 개발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두 회사는 최근 잇따라 내년 신제품 기획회의를 열고 있다. 에어컨 개발을 맡고 있는 이동욱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차장은 “올해 신제품도 2년 전부터 기획한 것”이라며 “기존 제품을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가전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원희 LG전자 RAC(가정용에어컨)상품기획팀 부장은 “소비자가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신제품을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