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건전 소비시장 위해 블랙컨슈머 근절해야
가시박이란 식물이 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병충해에 강해 오이나 호박의 접묘목으로 1980년대에 수입됐다. 가시박은 덩굴이 다른 식물을 타고 올라가 주변의 큰 나무까지 뒤덮으면서 광합성을 못하게 한다. 결국 다른 식물을 죽게 하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됐다.

국내 시장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시장은 건전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자유 의사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거래해 사회 전체적인 효용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생산자 또는 소비자 측면에서 이를 교란하는 요인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주로 생산자 측면의 교란 요인을 시정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담합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은 사업자에게 과징금을 부과하고 소비자를 기만한 사업자를 적발해 시정하는 것 등이 그런 예다.

최근에는 소비자 측면에서 시장을 교란하는 사례들이 적잖이 목격된다. 구매한 상품의 하자를 문제 삼아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거짓으로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보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블랙컨슈머’나 숙박업소, 대중음식점 등을 예약해놓고 아무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예약부도’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악의적이고 비정상적인 소비 행태는 1차적으로 기업에 불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지운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5대 서비스업종(음식점, 병원, 미용실, 공연장, 고속버스)에서 예약부도로 인한 매출 손실이 4조5000억원, 고용 손실은 10만8170명에 달했다고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3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83.4%의 기업이 블랙컨슈머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50%는 사실과 다른 악성 비방 때문에 판매 감소까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랙컨슈머의 피해자는 대부분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등 우리 사회의 경제적 약자라는 점에서 그 폐해가 심각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행동으로 인한 피해가 다른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블랙컨슈머 응대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예약부도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기업의 생산 및 유통비용을 높여 결국 상품 가격을 상승시킨다. 또 블랙컨슈머들의 문제 행동을 경험한 기업이 정당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조차 블랙컨슈머로 간주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일부 소비자들의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행동은 해당 기업에 피해를 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시장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등 공공의 이익을 해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소비자들의 문제 행동을 근절시키고 건전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올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우선 블랙컨슈머의 유형과 사회·경제적 폐해, 책임 있는 소비의 필요성 등을 담은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파하고, 교육부와 협조해 이 콘텐츠를 초·중·고교의 교육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포할 예정이다. 또 언론사, 소비자단체, 사업자단체,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한 캠페인을 실시해 소비자들의 자정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세계적인 마케팅 경제학자 필립 코틀러는 소비자의 권한과 역할이 극대화된 오늘날의 시장을 ‘마켓 3.0’이라 이름 지었다. 상품력으로 승부하던 1.0 시장, 서비스와 고객만족으로 승부하던 2.0 시장과 달리 3.0 시장에서는 ‘공동창조와 협력’이란 키워드가 새롭게 등장한다. 사업자와 소비자가 시장에서 협력해 공동창조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정부와 기업, 소비자들이 협력해 시장 생태계를 병들게 하는 교란 요인을 근절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한다면 마켓 3.0 시대에 우리 기업과 소비자 모두 윈윈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학현 <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