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 섬에 가고 싶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강기정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okang@assembly.go.kr >
![[한경에세이] 그 섬에 가고 싶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602/AA.11270494.1.jpg)
이번 설에도 잠깐이나마 거금도에 다녀왔다. 어릴 적 설날은 설빔을 모처럼 얻어 입고, 객지에 취직이나 공부하러 나갔던 형제들이 선물꾸러미를 가득 안고 오는 반가운 날이었다. 세뱃돈을 두둑이 받아 동네 점방 앞에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의 마음이 가장 넉넉한 날이었다. 반농반어의 섬이라 농한기인 겨울에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김 양식으로 바빴지만, 설 연휴 때만큼은 모두가 노동에서 해방됐다.
차례와 세배가 끝나면 동네 어른들은 화려한 복장의 농악대를 구성해 집집마다 돌며 액운을 막는 농악놀이를 펼쳤다. 농악대가 자신들의 동네를 다 돌고 나서 옆 마을들을 상호 교차 방문해 복을 기원해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지신밟기였다. 필자의 동네에서는 ‘메구굿’이라 했다. 농악대가 집에 들어와 마당과 부엌에서 한판 굿을 벌인 뒤 모두가 함께 “메구야”를 소리친다. 굿이 끝나면 집주인은 갖은 먹거리로 상을 차려냈다. 농악대를 따라다니던 아이들에게도 과일, 떡 등 먹거리가 푸짐하게 주어졌다. 군것질이 귀하던 시절이니 아이들은 마냥 행복했다.
설날의 흥겨움은 농악대뿐만 아니었다. 모처럼 돌아온 동네 청년들이 나서 마을 콩쿠르를 열었고, 섬의 대표 스포츠였던 씨름판도 펼쳐졌다. 참고로 거금도는 왕년에 박치기로 국민적 스트레스를 날려준 프로레슬러 고(故) 김일 선수가 태어나 씨름으로 청춘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이제 세월이 흘러 어릴 적 설날의 흥분은 많이 퇴색했고 농악대도, “메구야” 합창도 사라진 지 오래됐다. 씨름판은 자취를 감췄다. 세배 행렬도 예전 같지 않다. 인구가 많이 줄어든 데다 생활과 문화도 예전과 다르게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 고향의 발전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거금도가 도시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면서도 슬로시티의 삶을 즐기는 곳으로 발전해 예전의 활력과 전통이 되살아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필자가 늘 가슴 한편에 담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강기정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okang@assembly.go.kr >